그룹명/책걸이

맹신자들, 우리의 맹신이 승리로 ...

zamsi 2016. 11. 11. 01:00




   시절이 어지럽다. 민중의 위정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 맹자는 백성을 흐르는 물에 비유했다. 깊은 웅덩이를 만나면 고이고 가득차면 넘쳐흐른다고 말한다. 범람을 시작한 국민의 뜻은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자연 그대로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한 번 넘친 물은 결코 다시 역류하지 못한다. 지금 한국은 국민이 오랫동안 참아 온 분노의 둑이 터졌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민중의 분노를 보면서 오래 전 읽었던 책 한권이 떠올라 책장을 뒤졌다. 번역본 제목은 맹신자들이며 원어로는 THE TRUE BELIEVER 라는 책이다.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의 단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을 쓴 사람은 에릭 호퍼라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철학자다. 에릭 호퍼는 흔히 거리의 철학자라고 불린다.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이 노동자로 살면서 방대한 독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쌓아 온 사람이다. 50이 다 되도록 미국 전역을 유랑하며 웨이터, 부두 노동자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1951년에 발행된 에릭 호퍼의 첫 번째 저서 맹신자들은 그야말로 미국 사상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에릭 호퍼는 이 한 권의 책으로 단번에 노동자에서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만큼 책 맹신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사유와 뭇사람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회변혁과 대중운동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역사상 일어난 수많은 혁명과 사회운동의 뿌리에는 강한 믿음을 가진 행동하는 대중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에릭 호퍼의 시각이 색다른 이유는 이전까지 사회, 정치, 경제,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되어 온 혁명과 대중운동사에 대한 분석을 철저하게 인간의 심리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퍼는 대중운동의 원동력이 된 인간 개개인의 심리를 해체하여 군중심리 속에 숨겨진 인간본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대중운동을 생성시키고 소멸시키며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되고 변질되어 가는지를 씨줄과 날줄처럼 공교하게 엮어간다. 호퍼는 자신의 주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초기 기독교와 종교혁명 그리고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과 같은 수많은 혁명과 대중운동의 역사를 편람한다.

 

   예를 들면 대중운동을 지지하는 개인의 심리 속에는 변화에 대한 갈망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 변화의 기저에는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겪는 패배의식이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이 실패를 다시 일으켜 줄 대체제를 찾는 과정에서 대중운동에 투신하게 된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대중운동에 투신하는 맹신자들은 개인의 갈망을 역사 또는 사회의 변혁으로 호환하여 스스로 운동 참여의 정당성과 대의명분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변절자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왜 가난한 사람들이 변화와 혁명에 반대하고 보수주의자가 되는 지도 분석한다.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발전해 가는 과정, 즉 생성과 소멸까지 인간본성과 군중의 집단의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촘촘히 해부한다. 대중운동을 이끌어가는 세력들의 습성과 변절 그리고 대중운동을 이끌어가는 지식인의 허약함과 한계, 대중운동이 권력을 쟁취하려는 야심가들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고 변질되었는지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뒤통수를 크게 두들겨 맞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혹여 이 책이 군중 심리를 악용하는 교본으로 읽혀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책에는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한 설명 그리고 운동이 어떻게 변질되고 군중심리를 악용하는지 세세하게 설명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은 지금까지도 테러리스트의 심리를 이해하는 교본으로 읽혀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 책을 다시 편 이유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중 변혁의 기운을 다시 한 번 곰곰이 되짚어 보기 위해서다우리는 정치와 사회의 대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불의한 위정자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한국의 변혁 운동이 민중의 승리로 귀결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표면상으로 국민의 승리로 보이지만 실상 민중의 피와 땀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다시 기득권자들이 득세하고 말았다. 4.19 혁명의 불꽃은 5.16 군사쿠데타로 꺼져버리고, 80년 민중봉기와 광주항쟁은 전두환 군사독재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876.10 항쟁 역시 노태우정권의 연장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광우병사태로 노도와 같은 불길이 일어났지만 이명박 수구정권은 아무렇지도 않게 4대강 사업을 일으키고 다시 박근혜 정권을 만들었다.

 

   지금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분노에 찬 민심을 보면서 가슴 떨림과 동시에 또 한 편으로 민중의 사회변혁에 대한 요구가 다시 기득권의 승리로 재편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어두운 기억처럼 스멀스멀 피어난다. 우리는 이제 싸움의 본질에 대해 좀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분노와 광신, 맹신의 본능을 다독여 사회 변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방법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제공한다.

 

  다시 거리에 서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다시 패배의 눈물을 삼키는 것은 정말 싫다.

 

한 국가가 무언가를 열망하기를 중단하거나 그 열망을 구체적이고 특정한 이상으로 유도하기를 중단할 때 그 국가의 잠재적 역량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 에릭 호퍼 맹신자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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