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본곳

민중총궐기 참관기 '광화문 가는 길...'

zamsi 2016. 11. 13. 16:28




"이대 후문까지 밖에 가지 않습니다."


  버스 기사는 승차하는 모든 승객들에게 종착지 광화문까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승객들 누구도 따져 묻지 않았다. 모두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차 안을 억누르는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시시덕거리는 청소년들이 있었지만 웃음소리는 밝지 않았다.


  연세대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광화문까지 가려면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다. 가을 바람 선선한 연세로를 걸었다. 거리 곳곳에 젊음과 낭만이 흐르고 노란 은행잎 떨어진 벤치에는 가을이 누워있다. 거칠고 풋풋한 거리 뮤지션의 노래가 흐른다. 어지러운 시절에도 젊음과 열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구나. 청춘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한가롭고 자유롭다.  


 우리 세대는 저 나이 때 체루탄 자욱한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독재를 향해 짱돌을 던졌다.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 저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부러웠다. 우린 강퍅했다. 세상을 옳고 그름이라는 범주에서 정의와 불의를 재단하며 살아 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시절이 그랬으며 단지 그 때 우리에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허공에 꽃병을 던지는 일이 유행이었을 뿐이다.


  걱정한 만큼 지하철 안은 붐비지 않았다. 무표정한 사람들, 비장하지는 않지만 입을 꼭 다물고 시선은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짙은 침묵이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하시는 승객분들께서는 충정로 역에 하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청역은 많은 인파로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기차가 충정로 역에 멈추자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삽시간에 플랫포옴이 인파로 가득해 졌다. 한 사내가 마치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충정로 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내리는 것도 처음 보네."


  역 밖은 이미 시청을 향한 사람들의 긴 행렬이 시작되고 있었다. 청년들과 쌍쌍이 손을 잡은 연인들,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 손목을 잡은 가족에서 등산복을 잎은 초로의 아저씨와 여인네들, 두터운 파카를 목까지 잠근 노인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다. 경찰청 앞 건널목에서 행렬이 멈췄다. 부산행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기차 속 승객 몇 몇이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러자 화답이라도 하듯 행렬 속 사람들이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들은 무슨 이유로 서로에게 손을 흔들까? 마치 서로의 마음을 확인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시청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뛴다. 멀리서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군중의 함성이 쩌렁쩌렁 울려 온다. 석양은 기울어져 잿빛 건물들 사이로 어슴프레 보랏빛 어둠이 내린다. 


   인파, 인파, 인파! 숨이 막힌다.


  평생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시청역부터 사람들로 꽉 막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한 걸음도 더 나아갈수 없다. 반죽된 밀가루처럼 사람들이 뒤엉켜있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한문 앞에서 꼼짝도 못한 채 거의 한 시간을 서 있었다. 나아가지도 돌아설 수도 없는 인파였다. 겨우 숨통이 트인 것은 촛에 불이 붙고 시위대의 행진이 시작되면서 부터다. 군중의 분노에 찬 구호와 함성으로 옆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가슴이 뭉클하고 코 끝이 찡해졌다. 국민의 힘은 이토록 무섭다.


  겨우겨우 인파를 헤치고 일행과 만나기로 한 동아일보 앞까지 왔다. 일행과 함께 허름한 광화문 뒷골목 대포집에서 소주를 마신다. 그들 대부분은 80년 대 학생운동을 한 사람들이다. 이제 머리가 벗겨지고 예전보다 훨씬 말이 더 많아졌다.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나이 먹은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NL과 PD로 입씨름을 한다. 나이를 먹어도 이념은 쉬이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 선배가 푸념처럼 말한다.


"요즘 시위는 매가리가 없어."


  다시 거리에 섰다. 인파는 더 불어 난 것 같다. 촛불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삼람들이 한 곳에  머무르지도 못하고 사람에 치대 떠밀려 다닌다. 구호도 제 각각 다르고 질서도 없다. 성난 분노도 없고 성마른 욕지기도 들리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은 거리에 서 있다.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온한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100만 명 군중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성내지 않고 말하고 있다. 그 찬찬한 힘이 가을 밤을 밝히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이 많은 사람들이 윽박지르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은 채 그저 자신들의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깃발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시대도 끝났다. 각기 다른 생각이 스스로 합일점을 찾을 뿐이다. 그리고 그 힘이 마침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제 좀 더 자우로워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정말 거짓말처럼 번잡한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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