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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피아니스트, 소팽, 녹턴 그리고 박하사탕

zamsi 2012. 3. 1. 12:38

 

 

 

3.1절 늦은 출근 길,

도로는 한가롭다. 차창으로 파고드는 햇살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따뜻하다.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쇼팽의 녹턴이 흐른다.

볼륨을 올렸다. 물 흐르듯 유려한 피아노 선율이 가슴을 때린다.

 

오래 전에 본 영화 '파아니스트'.

미처 도피하지 못한 헝가리의 유태인 피아니스트는

폭격으로 페허가 되어버린 어두운 빈집에서 숨어 지내다

우연히 독일군 장교와 맞닥뜨린다.

 

굶어 죽기 직전의 피아니스트는

독일군 장교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최후의 연주를 시작한다.

헝클어진 머리, 쾡한 눈, 추위로 곱아 잘 펴지지도 않은 손가락을 펴서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사력을 다해 건반을 두드린다.

 

그 때의 흐르던 음악이 바로 쇼팽의 녹턴이다.

무슨 이유로 피아니스트는 그토록 처절한 상황에서

이토록 감미롭고 아름다운 녹턴을 연주했을까?

 

차창을 향해 정면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피아노 선율과 햇살에

문뜩 영화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설경구가 동료들과 간 야유회에서

자갈밭에 누워

따뜻한 햇살을 받고 가녀리게 흔들리는 들꽃을 바라 본다.

여린 꽃 이파리에 내려 앉은 햇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인공 영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아련한 추억

아련한 추억

 

아주 오래 전

연극을 하던 아주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선배가 하던 카페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카페는 작고 허름하고 어두웠지만

독특한 분위기로 제법 '아는 사람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낮에는 거의 손님이 없었는데 문을 닫아 두기도 그래서

저녁이 되기까지 가게를 지키는 일이 내 임무였다.

간혹 손님이 오면 커피를 끓여 냈지만

번거롭지 않을 정도였다.

 

카페에는 클래식 LP가 아주 많았는데

난 오전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음악에 푹 파 묻혀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박하사탕의 문소리처럼 긴 생머리를 한 여인이 카페에 들어섰다.

커피를 시키고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던 여인이 내개 말을 걸어왔다.

 

" 담배 한 대 빌릴 수 있을까요?"

 

담배를 건냈다. 그리고 난 읽던 책에 다시 빠져들었다.

조금 지나자 또 다시 그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담배 한 대 더 주실수 있나요?"

 

이번에는 내가 담배를 미처 건내기도 전에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난 담배를 건내고 친절하게 불까지 붙여줬다.

성냥 불꽃 속에 드러 난 그녀의 모습이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 싶기도 하고...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말을 붙였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틀어 드리겠습니다."

 

담배를 무심히 내 뿜던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카운터 테이블 앞에 놓인 자켓을 보며 반갑다는 듯 말했다.

 

"어머, 소팽도 있네. 이 것으로 틀어 주세요."

 

아! 난 그 때 그러지 말아야 했다.

돌이켜 생각할 수록 큰 실수였다. 

나는 아주 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듣고 계십니다."

 

판을 걸고 난 후, 빈 자켓을 카운터 테이블에 놔 둔 것이다.

그녀는 조용히 담배를 부벼 끄고 카페를 나갔다.

 

그 때 흐르던 음악도 바로 쇼팽의 녹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