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책걸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zamsi 2016. 7. 17. 08:33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




새벽에 일어나 작업을 하다

잠깐 쉬는 틈을 내 서재를 둘러보다가

기형도의 시집 '입 속에 검은 잎'에 눈이 멎었다.


아주 오래 전 우울한 이십 대 때

기형도의 시는 커다란 위안이었다.

시인의 일상에 대한 불안과 우울이

방황하는 심상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시집을 뒤적이다.

빈집이라는 시가 가슴을 때린다.

젊음의 열정

조금씩 늙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