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
새벽에 일어나 작업을 하다
잠깐 쉬는 틈을 내 서재를 둘러보다가
기형도의 시집 '입 속에 검은 잎'에 눈이 멎었다.
아주 오래 전 우울한 이십 대 때
기형도의 시는 커다란 위안이었다.
시인의 일상에 대한 불안과 우울이
방황하는 심상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시집을 뒤적이다.
빈집이라는 시가 가슴을 때린다.
젊음의 열정
조금씩 늙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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