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한씨연대기

한명숙과 박근혜가 대권을 두고 싸웠다면?

zamsi 2009. 9. 12. 02:53

한명숙에 대한 오해와 진실 5-2


한명숙은 실패를 모르는 정치인이다?

한명숙과 박근혜가 대권을 두고 싸웠다면?


자유를 꿈꾸는 정치인

  한명숙의 어린 시절 꿈은 작가였다. 그리고 나이를 먹은 지금의 꿈도 작가라고 한다. 한명숙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단다.


 

젊어서는 연극과 탈춤에 빠져 귀얄할미가 되었다는 한명숙. 그는 아직도 북 장단 소리를 들으면 어깨가 들썩여 진다고 한다. 미처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남편을 감옥에 보내고도 13년이 넘도록 긴 세월을 기다릴 수 있었던 힘도 한명숙이 간직한 자유롭고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을 게다.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은 충분히 정직하며 타인에게도 관대한 법이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 한명숙. 어쩌면 그녀는 지금도 자신을 둘러싼 속박의 굴레를  벋어 던지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르겠다.  


운명처럼, 어쩔 수 없이 정치에 복무하고 있는 자유주의자 한명숙. 그런 한명숙이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해 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한명숙이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승승장구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는 한명숙을 어려움과 실패를 모르는 유약한 정치인으로 단정지어버린다.


그러나 이와 정 반대로 짧은 한명숙의 정치 이력에는 좌절과 패배로 가득 차 있다. 한명숙은 장관시절을 제외한 5년의 정치 기간 중 크고 작은 선거를 네 차례나 치렀다. 그리고 단 한 번만 성공하고 나머지 세 번은 처절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한명숙의 유일한 승리는 17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한명숙이 정식으로 정치인이 된 선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선거 역시 온전한 한명숙만의 승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당시 폭풍처럼 몰아 친 탄핵 역풍이 없었다면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명숙이 시쳇말로 길에 떨어진 지갑을 운 좋게 주운 것은 아니다. 분명 탄핵의 바람이 작용하긴 했지만 한명숙이 아니었다면 승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사람들의 중론이다. 


한명숙의 지역구는 고양시의 분당이라 불리는 일산 동구였다. 일산 동구는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패배한 야당의 무덤이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한나라당의 간판스타 5선 홍사덕이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을 이겨 낸 것은 분명 한명숙이 가진 힘이다.

 


하지만 화려한 데뷔를 끝으로 이후 한명숙은 세 번의 선거에서  내리 패배를 기록한다.  그 첫 번째 패배가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을 선출하는 중앙상임위 선거였다. 그리고 두 번째가 2007년 통합민주당 대통령 경선이었으며 마지막 세 번째 패배가 18대 총선이었다.


그런데 세 번의 선거 모두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가 출마의 동기가 확연치 않다는 것이다. 선거 당시 인터뷰나 정황을 분석해 보면 한명숙의 출마가 모두 뜬금없고 즉흥적으로 보인다.


선거를 준비하는 정치인이라면 으레 선거이전에 움직임이 포착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언론은 그러한 정치인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하지만 한명숙은 그 어떤 출마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다. 언론에서도 한명숙의 출마에 대해 ‘전격’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유추하건데 이러한 사실은 한명숙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쩔 수 없이 출마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한명숙의 느닷없는 출마 강행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낙선 전문 한명숙

 

한명숙은 첫 번째 패배인 열린우리당 중앙상임위원장 선거에서 이다. 이 선거에서 한명숙은 살아있는 계파 정치의 쓴 맛을 아주 톡톡히 체험하게 된다.

 

당시 정황을 살펴보면 모두가 지지해 줄 것처럼 한명숙을 등 떠밀었지만 그 모두가 한명숙을 버려 버린다. 감탄고토(甘呑苦吐). 정치란 그런 것이다. 결국 8명의 상임위원장을 뽑는 선거에서 한명숙은 8등, 꼴찌를 하고 만다. 각 계파의 배제투표에 한명숙이 희생되고 만 것이다. 


정당 내 선거는 철저한 조직 싸움이다. 그리고 그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돈과 훗날 뒷배를 봐주겠다는 담합이 함께한다. 어떻게 보면 정치 경력 없는 초짜 한명숙이 술수가 판치는 선거판에서 패배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돈도 조직도 그리고 뒷배를 봐주겠다는 담합도 할 줄 모르는 한명숙이 자의든 타의든 선거판에 뛰어 든 자체가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한명숙의 두 번째 패배는 2007년 대통령 경선 출마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명숙은 왜 그야말로 느닷없이 대권 출마를 선언했을까 하는 의문점이다. 정말이지 한명숙이 도대체 무엇때문에 대통령 경선에 뛰어 들었을까?


앞서 말했듯 한명숙은 정치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정치인이 되기보다는 소박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불현듯 출사표를 던졌다. 그것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이다.


필자가 한명숙의 대통령 출마가 생뚱맞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전까지 총리로 있던 시절 동안 한명숙은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무총리는 마음껏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홍보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리고 실제 많은 국무총리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총리라는 자리를 최대한 활용해 왔다.


그런데 한명숙은 총리시절 철저할 정도로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당시 언론을 들추어 보아도 총리시절 한명숙의 정치적 발언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행정 총리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뿐만 아니라 한명숙은 당시 언론의 대선 후보군에 조차 들어 가 있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정치적 행보를 자제해 왔다. 다시 말해 한명숙은 대권에 대해 전혀 의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도 조직도 정치적 야망도 없는 한명숙이 그야말로 뜬금없이 대선 출마를 한 선언했다. 왜 이런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을까? 그런데 그 의문의 답을 찾는 실마리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 발견된다. 


오마이뉴스 오연호기자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차기 지도자로 한명숙을 지목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차기를 정할 수 있다면 한명숙을 지목하겠다고까지 말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무엇을 뜻할까? 그리고 과연 대통령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마음에만 품고 있었을까?

 

                                                                                       ▲ 사진 연합뉴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록을 찾아보면 차기 후보는 소통과 화합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한명숙의 트레이드 마크는 '소통과 화합'이었다. 이 발언은 대통령이 한명숙을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대통령의 속내를 해석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당시 여권 내에서도 의외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명숙 캠프에 참여했던 국회의원은 이광재와 백원우, 김형주 등을 비롯한 대표적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 가신 그룹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시사하는 점은 과연 무엇일까?  


만약 노무현 대통령의 차기에 대한 생각이 한명숙 본인에게 전해졌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과연 대통령의 뜻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 중 하나는 당시 이해찬의 출마 선언이 박근혜의 탈락이후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명숙은 철저하게 박근혜를 대항하기 위한 여권의 가장 주요한 히든 카드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근혜의 탈락은 한명숙의 경선 패배에 주요한 원인이 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마지막 세 번째 18대 총선에서 한명숙은 자신의 지역구 일산동구에서 마저  패배하고 만다. 선거 3일전까지 대부분의 언론은 한명숙의 압도적 승리를 예고했다. 그 이유는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한명숙은 10% 가까이 앞서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표의 결과는 2천 여 표 차로 한명숙의  낙선이었다.  투표율이 50%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투표를 기권하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반대로 대거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대 총선 이전에 여의도 정가에서는 한명숙 정계은퇴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불출마를 뜻하는 것이었다. 한명숙이 선거에 나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화 되어 갈 무렵 한명숙은 또다시 느닷없이 출사표를 던진다.

 

이명박 정권의 시작으로 당시 한나라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야당 수도권 전멸설이 나돌던 때가 바로 그 때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암흑과 같은 선거판에 한명숙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라도 꼭 한명숙이 필요했던 것이다.


준비되지 못한 후보는 선거에 이길 수가 없다. 한명숙은 불행하게도 준비되지 못한 후보였다. 아니 한명숙 스스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옳다. 한명숙이 준비하지 않은 까닭은 정치에 대한, 다시 말해 권력에 대한 욕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명숙은 자신의 꿈을 희생하고 늘 역사의 부름 앞에 충실했다는 사실이다. 세 번의 패배는 한명숙을 더욱 강한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지만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 뒤에 숨은 단호함과 냉정함은 성숙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한명숙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실패를 딛고 일어 난 오뚝이 정치인 한명숙. 국회의원을 낙선하고도 야당 정치인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해버린 한명숙.


그녀가 지금까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실패와 좌절을 견뎌내고 자신만의 부드러움 속에 단단함을 만들어 낸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지금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부드러움 속에 국민을 어루만져 주면서도 단호함과 엄정함을 가진 지도자.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가능성 있는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정치인을 만드는 것은 결국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다. 


단단한 내공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정치인 한명숙. 분명 한명숙은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우리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좋은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리고 한명숙을 지금보다 더 나은 정치인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