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한씨연대기

한명숙의 실패와 좌절

zamsi 2009. 9. 3. 10:38

한명숙에 대한 오해와 진실5-1


한명숙은 실패를 모르는 정치인이다?

한명숙의 실패와 좌절



정치신인 한명숙?

   한명숙은 그 어떤 정치인 보다 정치적 이력에서 승승장구해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한명숙은 정치적 쓴맛을 모르는 정치인, 또는 온실 속에서 곱게 자신의 품위만 유지해 온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한명숙이 이러한 오해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까닭은 총리와 장관을 역임한 대표적 이력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한명숙이 마치 평생 동안 정치를 해왔다는 그릇된 정보에 매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한명숙의 정치 경력이 몇 년이라고 생각하는가? 놀라지 마시라.


“정답은 9년이다.”


정치이력으로 따지면 한명숙은 아직 10년이 되지 않은 정치 햇병아리다. 그리고 그 9년 중, 오로지 정치인으로서 살아 온 삶은 채 5년이 넘지 않는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정치 거물 한명숙의 정치 이력이 기실 따지고 보면 5년 남짓하다고? 과연 그럴까?


어쩔 수 없이 정치에 복무한 사람

한명숙이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김대중 대통령의 두 번에 걸친 강한 권유 때문이었다. 당시 야당 총재의 정치입문 권유는 곧 의원 뺏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에~~ 한명숙씨 비례대표 의원시켜 줄게요.” 라는 말과 같다.


여의도 바닥에서 이런 우스개가 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산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논두렁 정기라도 받고 태어나야 한다.” 그만큼 국회의원 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일반인들은 국회의원 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잘 모른다. 얼핏 보기에 개나 소나 다 국회의원 뺏찌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되기란 일반인의 생각과는 달리 정말 어려운 일이다. 비례대표의원 뺏찌라도 달아 볼 요량으로 천문학적 거금을 돈을 당에 바치다 된통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한명숙은 그런 국회의원 자리를 아주 쉽게 거절해 버렸다. 이유는 정치에 대한 야망도 정치인이 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한명숙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 참여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두 번째 권유에 굴복하고 만다. 당시 한명숙은 미국 유학 중이었으며 박사과정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수년 간 게스트 하우스에서 빨래하고 방청소하며 어렵게 공부해 온 결실이 맺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한명숙은 입안이 모두 헐 정도로 고민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계에 입문한다.   


한명숙이 김대중 대통령의 두 번째 권유를 거절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밝히고 있다. 한명숙은 정치인이 되기 이전부터서 김대중 대통령을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그 존경하는 분으로부터의 두 번에 걸친 곡진한 청을 차마 뿌리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소위 말해 희생론이다.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거다. 한명숙에게 정치란 정말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였다. 지금 마치 문재인 변호사가 정계 입문을 온 몸으로 거부하듯...


정치인 한명숙의 시작

한명숙은 16대 비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치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정치인의 생활은 채 1년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이후 의원직을 사퇴하고 여성부 장관으로 옮겨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이어 환경부 장관이 되어 일해 왔다. 그리고 17대 선출직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얼마 후 총리가 된다.


한명숙의 정치 이력 가운데 행정 각료 시절 4년 여를 뺀다면 한명숙이 정치인으로 살아 온 삶은 고작 5년이 넘지 않는다. 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따지시는 분 계실 거다. 행정 각료 또한 정치 경력으로 봐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한명숙에게 장관직 이후의 미래설계에 정치복귀란 없었다. 장관직을 자신이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한명숙의 생각은 정치인이 아닌 사심 없는 행정가로서 본분에 충실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한명숙은 참으로 일 잘하는 장관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한명숙이 얼마만큼 유능한 장관이었나 하는 것은 그녀의 이력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명숙은 김대중 정부와 함께 임기를 마친 유일한 장관이었다. 또한 우리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두 번의 정권을 연이은 장관이 된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노무현 대통령의 차출로 여성부 장관에서 환경부 장관으로 다시 장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명숙은 환경부 장관이후의 삶을 강단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힘이 남는다면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강한 권유가 다시 그녀를 정치 바닥으로 불러들이고 만다. 17대 총선이었다. 한명숙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정치인으로 되돌아 왔다.


어떻게 보면 한명숙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어쩔 수 없이 정치에 복무한 사회운동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은 결코 정치인이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이브한 생각이 결국 정치인 한명숙에게 크나 큰 실패를 안겨주게 된다. 


한명숙은 4년의 짧은 정치 경력 동안 무려 4차례의 큰 선거를 치른다. 그리고 단 한번 만 성공하고 세 번 모두를 아주 처참하게 패배한다. 정치 초년병 그리고 정치에 대한 나이브한 생각을 가진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 것이다.


한명숙의 아픈 패배담은 이야기가 길어 져 부득이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