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우아한 독설

오해와 편견이 만든 땅밟기 광신

zamsi 2010. 10. 27. 17:49

쓰고 있는 컴퓨터가 접촉이 좋지 않다. 부팅이 되다 말고 끊어지기 일쑤다.

오늘은 찬찬히 컴퓨터를 뜯어 내부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여기저기를 조여주었더니 그동안 심하게 욍욍거리던 소음도 사라지고 부팅도 잘 된다.

아쉬운 데로 당분간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럴 때는 아주 기술자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난 집안에 고장 난 물건이나 수리가 필요한 곳을 제법 잘 고치는 편이다.

어렸을 적 부터 고장이 나면 일단 뜯어보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물론 기술과 전기, 전자 지식은 전혀 없다.

 

고장 난 물건을 뜯어보다 보면 요령이 생기게 마련인데

내 경우에 비추어 보면 대부분 고장의 원인은 접촉불량이 많다.

그럴경우 끊어진 선을 다시 이어주는 것은 그렇게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다.

맥가이버는 못 되더라도 호기심 만큼은 그에 못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이러한 나의 모습을 아주 낯설어 한다.

다시 말해 물건을 수리하고 고치는 따위의 일들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그 생각들이 편견에 가까워 사람들의 오해가 못내 서운하기까지 하다.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오해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몸을 쓰는 일에 있어 내가 아주 젬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나는 몸을 움직이는 일에 있어 그다지 서투른 편이 아니다.

고백하자면 이 오해는 내가 즐기는 편이기도 하다.

나서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힘 쓰는 일은 거의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잠을 많이 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잠이 많은 편이 아니다.

늦게 잠들어 그만큼 늦게 일어나는 것은 맞지만 

수면 시간을 따져보면 잠꾸러기라기 보다는 잠이 적은 편에 속한다.

 

왜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비실비실한 늦잠꾸러기로 비춰지는 것일까?

그 이유를 내 모습에서 찾아버리면 이야기가 재미 없어져 버린다.

 

나는,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 타인에 대한 오해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구는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생각들은 따지고 보면 사실 별 근거가 없다.

그저 그 사람의 모습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이 전부일 뿐이다.

그리고 내 판단을 살펴보면 결국 깊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오해와 편견은 스스로의 한계적 사고력에 기인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믿고 싶은 만큼만 믿어버리는 사람들의 이기적 편리에 의한 것이다.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 말하지만 그 '객관적 사실'의 구체성을 따져보면

대부분 주관이 아닌 타인의 판단에 동조하고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찬찬히 따져보면 

과도한 자의적 해석이 아니면 타인의 생각에 대한 묵시적 동조,

다수에 소속되어야만 안도하는 군중 심리가 그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책을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유는 과연 이 저자의 주장과 이야기가 옳은가 그른가를 따져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책 속의 말들은 모두 진리라는 맹신에 가까운 착각에 빠져 있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

그 수 많은 정보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흔들리지 않고 찾아내 지켜 내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오해가 우리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오해와 편견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 이전에  스스로의 생각을 옭죄는 일이다.

 

자신의 종교를 위해 타 종교를 비방하고 음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잘못된 믿음이 만들어 낸 오해와 편견이 얼마 만큼 무서운 것인지 새쌈 깨닫게 된다.

 

컴퓨터 먼지를 털어 낸 일이 너무 깊게 나가버렸다.

깊어 가는 가을 탓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