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한씨연대기

한명숙 총리와 한승수 총리의 평택 해결책

zamsi 2009. 8. 6. 08:57

 

 결국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가 극한의 상황까지 와버렸다. 몇 몇 노동자는 경찰을 피해 추락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권력의 주구들이 개 패듯 휘두르는 몽둥이찜질을 고스란이 받아내며 복날 개처럼 질질 끌려갔다. 지금 평택은 아비규환의 전쟁터이다.  누가 이들을 전쟁터로 내 몰았는가?

 

이제 2만 명의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관련업체의 규모와 사회적 여파를 따져보면 이번 쌍용차의 사태로 2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평택 시민 열 명 중 한명이다. 평택 경제의 20%가 붕괴 일로에 놓여있다. 지역경제가 초토화 되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토록 심각함에도  그동안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정부가 선택한 해결책이란 오로지 공권력을 동원하여 노조를 박살내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 밖에 없다. 오불관언(吾不關焉), 한마디로 ‘나 몰라라’다.

 

 ‘적대적 무시’(hostile neglect)라는 외교용어가 있다. ‘적대감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행위나 주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려는 태도나 대처방식’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부시 대통령 시절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다.

 

 

 

 ▲ 9.19 합의 성사 후 기념촬영에 나선 6자회담 수석대표들

 

 부시 미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북한봉쇄를 고집했다. 하지만 6자회담이 진행되면서 ‘적대적 무시’정책의 비현실성이 드러나자 결국 2005년 <9.19 합의>를 통해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로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소위 ‘깡패국가’라 불리던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통하지 않은 <적대적 무시>를 이명박 정부는 국민에게 적용하고 있다. 우리의 가카께서는 틈만 나면  국민을 섬기겠다고 구라를 풀어왔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이명박 정부에게 섬김의 대상이 아닌 무찔러야할 ‘적’이 되어버렸다. 적은 섬멸해야할 대상이다. 그래서 인지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식이 마치 군사작전을 보는 듯하다.  

 

 

 군사작전 가운데 ‘모든 시설이나 물자를 적군이 이용할 수 없도록 모조리 파괴하거나 불을 질러 없애는 것’을 일컬어 초토화(焦土化)라고 한다. 

 

 

                                                                            ▲ 세계일보 2009년 7월 31일자 기사


농성장인 쌍용자동차 공장에 대한 경찰과 회사 측의 단전과 단수, 농성 노동자들에 대한 음식물과 의약품 반입 봉쇄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사실상의 초토화 작전이다. ‘친서민 행보’를 내세우는 가카께서 이 땅 서민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다루는 실제 모습은 이처럼 표리부동하며 ‘적대적’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친애하는 가카께서는 입만 열면 국민과의 소통을 나발대고 있다. ‘소통’아, 니가 청와대로 가서 참 고생이 많다.


그렇다면 정부는 얼마나 어떻게 쌍용자동차 노조의 서민들과 소통을 해왔을까? 그 소통의 방식을 살펴보면,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노사문제에 정부가 개입해 바람직한 결과를 낸 적이 없어 정부가 나서지 않을 방침”(7월 20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조찬간담회)이라며 불개입 의사를 밝혔다. 이야 소통 지대루다!

 

한 발 더 나아가 주무부처인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생존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반(反)자본투쟁으로 정치적 이념이 상당히 깔려 있다”(7월 27일 기자간담회 발언)며 대화와 타협은커녕 도리어 이념적 갈등을 부추겼다. 우와 소통 만만세!

 

 더 큰 문제는 이들을 지휘해야 할 한승수 국무총리의 무책임한 보신(保身)행보다. 이번 사태에 대해 한승수 총리는 지난 6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노조의 합리적인 의사표현은 적극 경청하라”고 발언했다. 그 결과가 위에 나타난 우끼고 자빠진 상황되시겠다.

 

 시바 이건 총리 말을 안 듣는 거다. 가카도 소통하라고 하고 총리도 경청하라는데 기껏 장관 따위의 껏들이 말을 안 듣는다. 이따우 것들 짤라야 하는 거 아냐?


어제 평택 진압을 항의하러 간 야당 원내대표에게 한승수 총리는 한 술 더떠 '야당이 노조를 설득해 달라'고 했단다. 자기는 앉아서 주댕이만 나발 거리고 야당 보고 설득을 해달라? 이건 정말이지 몰염치도착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한승수 총리의 이러한 무사안일주의는 참여정부 시절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평택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 이주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한명숙 전 총리의 리더십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취임 초 한명숙 총리가 맞닥뜨린 최대 현안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공권력 간의 충돌사태였다.

 

부처인 국방부는 연일 강경책을 내놓았고 이에 맞서 대학생과 시민단체들이 대추리로 모여들었다. 2006년 4월에 이어 5월 4일에도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 부상자가 발생하고 연행자들의 규모가 늘어나는 가운데 5월 15일 또 한 번의 대규모 시위가 예고되었다.


한명숙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총리실로 이관해줄 것을 요청했다. 곧이어 5월 1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정부와 주민 모두의 인내’를 호소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현직 국무총리의 적극적 개입과 대화 제안은 주민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정부실무대표단과 팽성 주민대표간의 공식대화가 6월 초 부터 시작되고, 제 2의 광주로 까지 불렸던 평택 시위는 소강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 부산일보 2006년 5월 13일자 기사담당

 

한명숙 총리의 ‘평화적 개입’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입을 맞추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 시위대와 공권력이 상호 양보해야 한다는 건 법질서를 무시하는 잘못된 인식’, 즉 법대로 까부시라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실제 대화가 쉽게 성사된 것은 아니다. 국무총리실 대표단은 대추리 현지 협상과정에서 성난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두 시간 동안  차 안에 갇혀있다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한명숙 총리는 주민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9월 13일 개최된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에서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의 빈집 철거와 관련해 “내부조사를 철저히 해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특별 지시했다. 또한 대표단에게 주민을 설득하려 들지 말고  주민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것을 당부했다. 대표단이 먼저 평생동안 살아 온 고향을 빼앗기는 주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7년 2월 13일 정부와 대추리 주민대표 간에 이주합의가 최종 타결되었다. 한명숙 총리의 대국민 담화 발표 후 9개월만의 일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김종일 사무처장은 지난 6월 19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에서 “당시 한명숙 국무총리는 주민들에게 수모를 당해가며 평택을 찾았고 대국민 담화도 발표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우리는 지금 두 정부에서 두명의 韓총리가 보여주는 평택에 대한 태도를 목격하고 있다. 한 명이 대화를 통한 진정한 소통을 추구했다면 다른 한명은 국민을 적으로 여겨 섬멸하려하고 있다.


“최고의 정부란 국민이 스스로를 다스리도록(govern ourselves) 가르쳐주는 정부”라고 괴테는 말한다. 권력의 정당성은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국가 전체의 이익과 조화시킬 수 있도록 지혜롭게 안내해줌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쌍용자동차 문제를 대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태도는 중산층과 서민이 아니라 소수 기득권 세력의 권리와 국가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전형적인 ‘강부자’식 발상이다.


2만 명이 넘는 ‘워킹 푸어’(Working Poor)들의 생존이 걸린 쌍용자동차의 청산․매각을 고집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들 앞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워킹 푸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코믹한 현실, 이 악몽 같은 시간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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