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두근거림도 없이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차가 아버지 집에 다 와 갈수록 설램보다는 가슴이 답답했다.
귀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이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곳은 '아버지 집' 일 뿐이었으며 나는 연례 행사처럼 아버지를 보러 갔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먼 강원도 동해안 작은 포구에 살고 있다.
그곳은 새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타지에서 아무 친구도 없이 아버지는 그렇게 쓸쓸하고 외롭게 늙어가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아버지의 업보 인지도 모른다.
무던히도 어머니의 속을 썩였고 그만큼 우리 식구는 힘 들었다.
난 쟁쟁했던 아버지의 젊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멋지고 잘 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우리를 돌아다 봤다.
하지만 한 때의 아름다움은 일흔 넷의 노인에게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제 아버지는 그저 늙은 노인일 뿐이다.
내가 유일하게 자식 노릇을 하는 일이라곤
명절을 핑계 삼아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일 밖에 없다.
내색은 않지만 아버지가 일년 내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볼 우물이 좀 더 깊게 패였다.
늙음도 청춘처럼 빠르다. 아버지의 쾡한 눈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 사는 게 도통 재미가 없다. "
친구를 좀 사겨보라고 얘길하려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버지는 붙임성이 없다. 고집이 세고 잘 토라져 비위를 맞추기 쉽지 않다.
난 그런 아버지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일흔 넷의 나이에도 주유원에서 주유를 하고 있다.
그 나마 그 시간이 유일하게 외롭지 않은 시간일게다.
그리고 아버지가 버는 작은 수입이 두 노인네가 살아가는데 큰 수입원이다.
갈 때 마다 용돈을 쥐어드리지만 건네주기가 쉽지 않다.
늙어도 자존심 만큼은 여전히 팽팽하다.
목욕탕엘 갔다. 아버지가 사는 곳 부근에 유명한 온천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목욕탕을 가면
아버지는 늘 '나라시'라고 부르던 때밀이에게 자신의 몸을 맡겼다.
그리고 목욕이 끝나면 병에 든 뜨거운 우유를 사주었다.
아버지가 내 등을 밀었다.
" 때가 많다."
" 등을 밀어 줄 사람이 없어서요."
" 나도 그렇다."
가슴이 먹먹했다. 등을 미는 손길에 너무 힘이 없다.
아버지가 등을 돌리고 돌아 앉았다.
마르고 야윈 어깨, 목덜미에는 검버섯이 올랐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아버지 등을 밀어 줄 수 있을까?
아버지는 탕의 습기가 싫다고 먼저나가셨다.
난 아버지가 나가자 찬물에 머리를 박고 오래동안 숨을 참았다.
아버지가 목욕탕 앞 벤치에 그림 같이 앉아
병 우유가 아닌 옥수수 수염차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난 아버지가 건네 준 옥수수 수염차를 말도 없이 홀짝였다.
그 때 였다. 아버지가 내 손에 뭔가를 쥐어 주셨다.
" 옛다, 다이아몬드다. "
손을 펴자 작고 이쁜 돌이었다.
나를 기다리며 목욕탕 앞 마당에 깔린 자갈 중에서 고른 것이 분명했다.
" 돌처럼 변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 말을 끝으로 겸연쩍었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차를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그 순간 지난 어린시절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도 저처럼 늙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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