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동안

바보 그 사람 백원우

zamsi 2010. 9. 12. 14:37

바보 그 사람 백원우


  그에 대한 첫인상. 뭐랄까 우직한 듯 하면서도 고집스러워 보였다. 나와 그의 인연은 2007년 한명숙 총리 대선준비 캠프에서였다. 난 당시 한명숙 총리의 보좌진 중 한 명이었으며 백원우의원은 한명숙 총리를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국회의원 중 한명 이었다. 그저 수인사만 나누었지 깊은 대화를 나눠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시 내가 하던 일은 후보의 메시지를 만들고 온라인 조직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노사모를 비롯한 일군의 온라인 조직과 한명숙 후보가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다. 여의도 어느 식당이었다. 그 자리에 백원우 의원이 함께 참석했다. 당시 노사모는 유시민, 정동영, 이해찬 등으로 지지가 사분오열되어 있던 상태였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는 후보가 한명숙이었다.

 

 

  올드 노사모를 비롯하여 아이디를 대면 알만한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원우의원을 예전부터 알고 있는 듯 보였다. 후보가 오기 전에 술잔이 몇 잔 돌았다. 그 때 몇 몇 노사모가 백원우 의원에게 딴지를 걸고 나섰다.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백원우 의원이 충분하게 모욕을 느낄 만했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그 순간 백원우 의원이 입을 열었다.


“형들, 너무 그러지 맙시다.”                                      ▲ 출처. 조은뉴스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실 많이 놀랐다. 난 비교적 많은 국회의원들을 가까이에서 봐왔다.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권위 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그런 자리다. 밖에서 보는 국회의원과 옆에서 보는 국회의원 자리는 아주 크게 차이가 난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주변인들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국회의원들은 권위가 몸에 배기 마련이다.


  국회의원 백원우 입에서 나온 ‘형들’ 이라는 말이 오래 동안 가슴에 남은 이유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권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생경해 가식이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게 인간 백원우의 모습이었다. 거짓을 꾸며낼 줄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백원우였다.


 이후 아다시피 한명숙 총리는 이해찬 총리와 단일화로 인해 경선에서 하차했다. 그게 백원우 의원과의 마지막이었다. 간혹 행사장에서 만나면 의례적인 수인사를 나누는 것을 제외하고 별달리 말을 섞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서울시장 캠프가 섰다.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캠프는 거의 절망적 분위기였다. 캠프에서 백원우 의원과 우연히 다시 만났다. 백원우 의원은 보자마자 구둣발로 나의 쪼인트를 깠다. 그리고 한동안 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정말 화가 난 듯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서 가버렸다. 난 그 쪼인트의 의미를 안다. 정강이 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한명숙 총리의 낙선은 본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캠프의 잘못이 크다. 그리고 난 그 패배의 원인 중 한 명이었다.  

 

 

 

 

  오늘 백원우 의원이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난 예전 걷어차인 정강이의 통증처럼 가슴이 아프다. 백원우 의원의 후보직 사퇴에서 바보 노무현의 눈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치란 그렇다. 정치인은 더 그렇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려 들지도 않을뿐더러 자신과 계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변명도 마다하지 않는다.


  백원우는 486 단일화 불발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상황이 어떠하든 난 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지 정말 잘 알고 있다. 특히 진영과 진영과의 싸움에서 개인보다 진영이 우선시되는 정치판에서 얼마나 많은 그의 스텝들이 심하게 반대를 했을지 눈에 선하게 보인다. 그 뿐이랴 여기저기 선후배들이 ‘왜 그 책임을 니가 져야하느냐’며 윽박지르는 것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그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결정이라 더 외롭고 힘들었을 게다. 난 그에게서 떠나간 바보 노무현의 모습을 본다. 국회의원 백원우, 정치인 백원우 난 다시 새로운 눈으로 그를 본다. 그리고 비로소 이제 국회의원, 정치인이 아닌 인간 백원우의 모습으로 그를 불러보고 싶다.


“원우 형 고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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