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본곳

지리산을 다녀오다.

zamsi 2010. 11. 10. 18:49

여독이라고 해야하나? 2박 3일은 짧은 지리산행 끝에 다음 날 약속이 잡혀 있어 파주 심학산까지 다녀왔더니 끝내 쌓였던 피곤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근 이틀을 구둘짱에 누워 헤롱헤롱 잠만 잤다.

 

이번 지리산행은 머쓱할 정도로 여유있고 넉넉했 했다.높은 봉우리는 거의 차로 올랐고 그 나마 다리가 팍팍했다면 고작 산등성이를 따라 걸으며 가을 만끽한 것이 전부다. 이번 지리산행은 산을 타는 것이 목적이 아닌 지리산의 둘레를 휘적휘적 놀이 삼아 둘러보는 한갓진 산책 같았다.

 

갑자기 여행에 동행하라는 호출을 받은 것은 출발 하루 전이었다. 지리산행이라는 말에 내심 긴장하고 딴에는 제법 결기에 찬 산행의 차림으로 무장을 했지만 조여 신은 등산화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지리산 주변에 가보기 힘든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들로 일정이 짜여져 있어 눈과 입과 마음이  한껏 호사를 부린 시간이었다.

 

아래는 2박 3일 동안 여행 중 드문드문 사진으로 남긴 기록이다.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은 터라 이 동네 찍사들에게 심히 부끄럽다.

 

 

 

쌍산제라고 지리산 구제봉을 가는 길에 있는 오래된 집이다. 지금은 6대 손이 집을 지키고 있었으며 펜션과 홈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었다. 오래된 집답게 정원의 품새와 옛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진은 집의 대문과 현판이다. 솟을 대문이 아니지만 집은 퍽 큰 편이다.

 

 

 

쌍산제 안의 정원 뒷 동산을 오르는 돌 계단. 대나무 잎이 바람에 차스락 대며 운치를 더해준다.  

 

 

돌 계단 끝 위의 정자. 참 운치 있다. 정자에 앉아 시조라고 한 곡조 뽑아보고 싶어진다.

 

 

 

쌍산제의 돌담. 돌담은 옛것 그대로이고 기와는 새로 얹었다. 돌담에 햇살이 가득 내려 앉았다.

 

 

 

구제봉 중턱에 있는 한국 최정상 펜션. 한옥이다. 해발 1천 m가 월씬 넘는 위치다. 앞으로는 이현상이 사령관으로 있던 빨치산의 본거지 백운산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밤에는 가히 별비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영롱한 별빛이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산이 찢어지도록 노래를 불렀다.

 

아무리 고성방가를 해대어도 신고 따위는 할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사방 사위는 숲으로 아득하여 덩그마니 한옥 서너 채만 있으며 모두 펜션이다. 사진의 집이 펜션의 본체이고 그 뒤로 작은 한옥이 두서너 채 더 있는데 황토 찜질방까지 있어 산행에 찌든 피로를 말끔히 해소해 준다.

 

 

 

구제봉 페러글라이딩을 위한 활공장이다. 내려다 보이는 곳이 토지의 본향 악양면 평사리이다. 좌측으로 섬진강이 흐르지만 시계가 좋지 않고 폰 카메라 한계로 인해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었다. ㅠㅠ

 

 

 

여행 둘째 날, 악양면 평사리에 왔다.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려 여행자의 발길을 좀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끝내 유혹을 참지 못하고 잘 익은 놈으로 훔쳐 먹었다. 얼마나 달고 시원한지 그 감미로운 맛이 아직도 입안에 가득하다.  아래 보이는 정자가 마름들이 소작농들을 감시한 정자라고 한다. 보이는 넓은 평야가 소설 토지의 들판이다. 

 

 

섬진강 변에 살고 있는 이원규 시인의 집을 찾았다. 오래전에 지리산으로 내려 온 시인은 월세 5만원의 거대한 저택에 살고 있었다. 농이 아니라 정말 넓고 큰 집이었다. 사진은 집에 딸린 정자이다. 시인이 내온 찻빛이 곰살맞도록 곱다. 사진 뒤로 보이는 것이 섬진강이다.   

 

 

시인의 집 정자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이다.

 

 

결국 섬진강변을 찾아 왔다. 시계가 좋지 않아 사진이 흐리다. 폰카의 한계를 유념해 주시라 ㅠㅠ

 

점심은 섬진강변의 식당에서 참게메기 매운탕으로 먹었다. 어찌나 시원하고 맛나던지 국물을 마치 라면 국물 마시듯 벌컥 벌컥 마셨다. 간밤에 술에 찌든 일행들의 '카카~~' 거리는 소리가 가득한 점심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같은 강변이지만 밥을 먹을 때는 차를 돌려서 기어이 전라도 땅으로 건너간다고 한다. 하동과 바로 옆동네 구례, 광양과는 맛이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기실 바로 옆동네 인데^^ 너무 허겁지겁 먹다보니 사진 찍는 것을 놓쳤다.

 

 

둘째 날 묵은 펜션이다. 일부러 간판이 보이게 찍었다. 이유는 너무 좋아 많은 사람들에게 좀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위치는 지리산 칠불사 주변이라고 한다. 산 계곡을 따라 정말 그림처럼 한옥이 들어 서 있다. 집은 모두 황토로 지었으면 아궁이는 나무를 땐다. 펜션 옆으로 제법 큰 개울이 흐른다. 밤에는 물소리가 골골거릴 정도로 고요하다. 이 고요한 계곡을 새벽 두시가 넘도록 고성방가로 얼룩지게 하고 말았다. 부끄럽다. ㅠㅠ

 

 

들꽃산방의 안채이다. 뒤로 별채들이 보이고 오른쪽이 바로 계곡이다. 여름에는 개울가에 발만 담궈도 더위가 멀찍이 물러날 것만 같았다.  

 

 

 

 

본체 뒤에는 있는 별채. 한 가족이 묵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으며 안에는 화장실과 욕실이 함께 있다.

 

 

 

개울가에서 바라 본 들꽃산방. 고성방가로 밤을 어즈럽힌 원흉들이 쓰린 속을 개울물을 보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들꽃산방의 정원 길. 조붓하고 정겹다.  

 

 

돌아오는 길에 아는 선배의 보성집에 들렀다. 보성에서 어머니가 차밭을 일구고 계셨다. 새로 지은 한옥이 정말 멋지고 아름다웠다. 송광사 대목수가 지었다고 한다. 사진은 집의 옆에 붙은 별채이다. 방에 들어서면 솔향이 가득하고 바닥은 콩기름 입힌 장판이 깨끔하다. 작업할 일 있으면 서너 달 일하다 가라는 선배의 말을 낼름 주워 못을 박아두고 왔다.

 

지리산행이라는 말에 강행군을 연상했던 분들, 미안하다. 산 안탔다. 편하게 차로 다녔다. 걍 마시고 먹고 놀고 왔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