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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msi bon INDIA. 1. 푸른 터번의 사나이

zamsi 2010. 11. 12. 03:24

 

 

 

     ▲ 동 트는 커주라호의 아침 들판.   

 

  인도를 다녀 온 지 거지 두 해가 흘렀다. 늦게 여행기를 올리는 까닭은 첫째는 게으름이며 둘째는 나름의 애닯은 사연 때문이다.  장 기간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무기력증과 비슷한 우울증을 겪곤한다. 가슴 일렁이는 여행의 환상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해 현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여행을 함께한 까닭에 동시에 여행 우울증의 늪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로 인해 꽤 심각하고 오랜 냉전을 겪고 나서야 겨우 제 자리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아내와의 냉전이 수습되자 이번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들이 밀어 닥쳐 여행기나 한가하게 쓰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2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이제는 2년 전의 감흥이 남아 있지 않다. 간직한 것이라고는 여행 때 찍은 어설픈 사진과  끄적거려 둔 수첩 한 권 정도의 메모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기를 쓰자고 마음을 다잡은 이유는 더 이상 지체하면 인도에서 느꼈던 감흥과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오롯한 기억과 해방감들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인도. 매케한 커리 냄새와 자욱한 먼지, 눈과 마음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찬연한 문화 유적과 남루한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 그리고 그 뒤안길에 숨어 있는 사람에 대한 진정성과 기만 그리고 불쾌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간직한 나라. 마천루처럼 높다란 빌딩 숲 사이에 유유히 소떼가 걸어다니며 상상도 하지 못할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을 천형처럼 이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끈질긴 집착.

 

그 끈끈함 속에 인도는 탁하지만 끊임 없이 흘러가는 겐지즈강처럼  위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무심해 보이지만 따뜻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사소한 일에도 크게 웃는 사람들. 질릴 정도로 여행자를 귀찮게 하는 호객꾼들과 여행객을 노리는 탐욕 가득한 눈빛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 무례함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정이 함께하고 있다.  

 

고작 한 달 남짓의 시간으로 인도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인도 문화에 대한 모독이며 인디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의 짧은 인도에 대한 기록은 부실하고 조악하다. 또한 인도에 대한 생각 또한 단편적이며 자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관계로 인도에 대한 나의 기록을 그저 인도 감상기 쯤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무지로 인해 내 글에 나타날 수 있는 편협함, 협량함에 대해서 미리 양해와 용서를 구해 둔다. 

 

 

<푸른 터번의 사나이>

 

인도까지 직항은 비행기 값이 비싸 홍콩을 경유해 가는 길을 택했다. 문제는 홍콩 공항에서 델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4시간 넘는 다는 것이다. 밖을 나가기에는 애매하고 또 홍콩은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여행 일정을 짜둔 터라 그냥 공항에서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홍콩 공항은 횡하고 활기가 없어 보였다. 홍콩 반환이후 홍콩이 쇠락해 가고 있음을 공항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내부는 인천공항과 비슷했다. 별로 달리 할 일이 없는 관계로 공항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홍콩 사람들은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그 큰 홍콩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압하는 목소리가 있으니 바로 한국 사람들이다.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보인다. 이제 갓 스물이 넘은 것만 같은 어린 학생들이다. 구호물품을 실은 박스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선교 단체가 아니면 봉사단체 인 듯 싶었다. 하지만 여행의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정말 시끄럽게 지지배배 지절거렸다. 아내와 한국 여행객들을 피해 홍콩 공항에서 가장 외지고 한적한 곳에 퉁지를 텄다. 아내는 알뜰하게도 비닐봉지 안에 과일을 한 가득 깍아왔다. 공항에 퍼질러 앉아 우적우적 과일 씹어 먹었다.

 

늘 여행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묘한 두려움이 함께 한다. 인도라는 나라는 가기도 전에 사람을 주눅들게 했다. 악소리가 날 만큼 흥미롭고 신비로운 여행지라는 타이틀 뒤에는 늘 꼬리표처럼 불안한 치안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들 좀 자두고 싶었지만 웬지 모를 쓸쓸함과 객창감으로 좀체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아내는 이미 명품 샵으로 눈 구경을 떠나버렸다. 하릴없이 공항 이 구석 저 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공항을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몰려 왔다. 하루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 참으로 맛 없는 돈까스와 우동을 먹은 것이 전부였다. 공항에서 깔쌈한 홍콩 음식 하나를 사 먹고 싶었지만 기내식을 먹어줘야 한다는 아내의 우격다짐에 지고 말았다. 가져 온 인도에 관한 책을 꺼내 읽는 동안 기어이 기다리던 델리행 비행기가 도착했다. 퍼시픽 에어라인.

 

벌써 홍콩은 어두워졌다. 비행기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흥분이 여행자의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그리고 곧이어 아내가 기다리던 기내식이 나왔다. 기내식은 인도식이었다. 비로소 우리가 인도로 여행을 가고 있다는 실감이 몰려온다.   

 

커리와 탈리 그리고 닭고기, 인도 향신료가 아내의 식욕을 왕성하게 만든 만큼 내 식욕은 가시게 만들고 말았다. 아! 글로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보수적이기까지 촌놈의 빌어먹을 입맛이여. 배가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기내식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함께 딸려 나온 빵과 샌드위치만 먹었다. 옆에서 아내는 볼이 미어지도록 아무지게 먹고 있다. 맥주와 위스키를 부탁해 양폭으로 말아서 두 잔을 거푸 완샷해 버렸다. 그제서야 졸음이 몰려왔다.

 

잠에서 깨어 난 것은 거의 델리에 다 와서 였다. 비행기는 현지 시간 새벽 1시 30분이 넘어서 인도 델리공항에 도착했다. 델리는 생각보다 추웠다. 새벽 공기는 상큼하지 못하고 매캐했다. 공항에서 부터  인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입국 수속을 하는 공항 직원은 무척 고압적인 모습이었다. 계급이 존재하는 나라. 어쩌면 이 공무원은 우리를 자신보다 낮은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을 나서자 마치 낡고 색바랜 파스텔의 그림 같은 인도의 밤 풍경이 어둡게 다가섰다. 불빛이 너무 어두워 사물이 창백해 보일 정도다. 무표한 표정으로 우리의 앞을 가로 막고 행선지를 물어보는 호객꾼들의 모습에서 위압감을 느꼈다. 불안했다. 아내는 내 손을 꽉 잡았다. 우리를 기다리기로 한 가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더 엄습했다. 이 어둡고 낯선도시에서 아내와 나만 남겨진 것만 같았다.

 

조금 후 기다리던 가이드가 우리의 이름을 든 도화지를 흔든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까만 피부, 커다란 눈동자, 밤이 늦어 피곤해 그랬을까 표정이 없다. 통 성명을 했다. 이름이 삐삔이라고 한다. 삐삔은 호텔로 가야 한다면 아내의 배낭을 들쳐 매더니 성큼 성큼 앞서 걸었다. 어두운 길을 10여 분 걸었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낡은 승용차에서 운전수가 내렸다. 차는 무척 낡아 거의 폐차 직전에 가까웠다. 사이드 미러는 깨어지고 엔진 소리는 심하게 덜덜거렸다.

 

차를 타고 한 시간이 넘게 밤길을 달렸다. 도로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총을 찬 군인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밖은 어운데다 밤안개까지 짙게 깔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캄캄한 아스팔트만 바라보며 한 시간 동안 달려왔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혹 멍텅구리배의 노예처럼 팔려가는 것은 아닐까? 아내는 그 새 가이드와 조잘조잘 이야기 중이다. 한국 말보다는 영어를 훨씬 더 잘해서 내 귀와 기를 동시에 죽이고 있다.

 

드디어 차가 정차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빠하르간지'라는 한국으로 치면 이태원과 같은 곳이 었다. 하지만 길 바닥은 오물투성이의 흙바닥 이었으며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가이드는 낡은 게스트 하우스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정말 작고 지저분한 방으로 우리는 안내 되었다. 침대에는 한 눈에 봐도 족히 몇 년 동안은 세탁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때에 절은 담요가 시트 대신 깔려 있었다. 퀴퀴한 화장실 냄새와 인도의 향신료 냄새에 머리가 지근거릴 지경이었다. 가이드는 우리를 이 너저분한 방에 부려 놓은 채 내일 아침에 온다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

 

피곤에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불안감과 낯선 곳이 주는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침대위에 가져 온 침낭을 깔고 누웠다. 옷은 벗지도 않은 채. 아내도 나도 불안했다. 한참을 몸을 뒤척이는데 밖에서 알 수 없는 힌디어와 함께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쇠구멍으로 방 밖을 내다보니 파란 터번을 쓴 건장한 남자가 우리 방을 쏘아보고 있었다. 어찌나 눈빛이 강렬한지 잠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우리가 '왓 왓'만 외치며 문을 열어주지 않자 한참을 우리 방 앞에서 서성거리다 사라졌다. 터번의 사내가 사라지고나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 신새벽에 가 터번의 남자는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방을 그렇게 세차게 두드려 댄 것일까? 불안한 마음에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아침이 돌아왔다.

 

아! 인도의 첫 아침이 이렇게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