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동안

우리에게 좋은 날이 되었네

zamsi 2010. 11. 26. 15:26

 

 

 

어제, 밥상을 앞에 두고 아내와 작은 말다툼이 벌어졌다.

베란다로 따사롭게 여며드는 햇살을 보면서

아내는 아무런 작심도 없이 한 마디 툭 내 뱉었다.

 

" 거실까지 햇살이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

 

난 그 말의 의미를 안다.

아내는 입버릇처럼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말해 왔다. 

생각해 보니 아내는 한 번도 우리가 사는 집에 만족한 적이 없다.

 

처음 우리는 열 네평 작은 아파트에서 신접 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신접 살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했다.

 

세탁기와 냉장고는 이민 가는 선배가 물려주었다.

그 세탁기와 냉장고를 우린 아직도 쓰고 있다.

가스렌지는 중고시장에서 2만원에 사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올 때 바꿨다.

그 집은 작고 음침했으며 환기마저 제대로 되지 않아

인후가 늘 불안하던 난 인후염을 안고 살았다.

 

이후 그 집의 전세 마저 반토막 내어 다른 1층 빌라로 집을 옮겼다.

벌이가 신통치 않아 빚을 갚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집 역시 낮에도 불을 켜야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내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서도 실내용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그리고 또 한 차례 이사를 했다.

집 크기는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전세 대출을 받아

볕이 지나치게 잘 드는 2층 다세대 주택이었다.

한 여름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집이 었다.

 

세 번의 이사 동안 아내는 늘 더 큰 집을 입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아내가 원하는 더 큰 집에 살게 해 줄 수 없는 난 못나고 무능한 가장이다.

내가 취직을 하고 아내도 취업을 하여 몇 년간 고정적 수입이 들어오자

착실한 아내는 따복따복 그 수입을 저축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2년 전 지금 사는 스무 평 아파트로 다시 이사 올 수 있었다.

이사 오기 전 아내는 정말 좋아했다.

동네 아줌마들과 이사 올 집에 도배를 하고 넓어진 거실을 청소하며

아내는 아이처럼 깔깔거렸다.

아내는 재잘거린다. 아내는 팔랑거린다. 아내는 그렇게 심성이 곱다.

 

그럼에도 아내는 더 크고 편안한 집을 원한다.

그 아내의 바람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난

내색은 안해 왔지만 많이 속상하다.

 

어제 아내의 무심코 뇌까리는 말에 나도 모르게 욱하는 짜증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짜증은 아내에게 대한 원망 보다는

무능한 가장으로서의 졸렬한 열등감일지도 모른다.

결국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내가 말이 없어지더니 베란다로 가서 괜한 빨래를 뒤적거린다.

뒤 돌아 서 있지만 난 아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안다.

짠하다. 짠하다. 아내도 나도 짠하다.

 

가서 아내를 안아 주었다. 부끄러웠던지 아내는 말없이 돌아와서 다시 밥을 차렸다.

아내는 울보다. 아내의 심성은 너무 여리다.

 

오늘 무심코 잘 가는 커뮤니티의 카페에 올려진 음악방을 찾았다.

아그네스 발차의 '우리에게 좋은 날이 되었네'라는 곡을 들었다.

노래를 들으며 노랫말을 곱씹다 코끝이 찡해진다.

 

우리에게 좋은 날이 되었네 (Aspri mera ke ya mas) / 아그네스 발차 (Agnes Baltsa)

 

짜디짠 눈물로 시간을 적시게 되겠지.
너와 그 쓰디쓴 여름들을 보내며 자랐으니까
돌아올게, 그러니 슬퍼하지마, "괜찮아"라고 말해주렴,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 뭐..

 

기어이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눈물이 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나도 아내도 눈물이 많다. 우리 부부는 울보다.

 

지금도 가난하지만 더 가난했던 지난 날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좋은 날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도 내일 우리에게 더 좋은 날로 기억되어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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