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순C 이야기

문순c 선거 뒷 이야기2. '엄기영의 역습' 1차 TV 토론

zamsi 2011. 5. 2. 22:18

 

  선거가 시작되엇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선거전략을 정치선거로 확정했지만 문제는 선거를 끌고 나갈 정치적 이슈가 없었다. 반 MB에 대한 카드는 강원도 관계자들의 완강한 반대로 꺼내지 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앞에서도 밝혔듯 이광재 동정론만으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 어떤 방식이든 최문순이 부각되어야만 했다.

 

  그 무렵 삼척 원전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후보의 입장은 명확한 반대였다. 그것은 후보의 철학이었다. 후보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무골호인처럼 보이지만 결코 꺾을 수 없는 단단한 내공을 가진 무서운 사람이 최문순이었다.

 

 

 

    문제는 캠프였다. 특히 강원도 선거관계자들이 후보의 유치반대 입장을 유보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삼척 원전유치에 대한 현지 민심이 찬성에 가깝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역 민심과 후보의 철학이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엄기영 후보는 이미 언론을 통해서 찬성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캠프는 결국 후보의 뜻대로 원전반대 입장을 발표해야만 했다. 이미 후보가 언론에 자신의 반대 입장을 넌지시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캠프와 후보의 기싸움에서 싱겁게 후보가 이겨버렸다. 그것도 아무런 잡음도 없이,,,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삼척 원전은 최문순과 엄기영을 대별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엄기영 후보가 오락가락 줏대 없는 행보로 언론에 집중 포화를 받은 반면 최문순은 소신이 있는 사람으로 이미지화되었기 때문이다. 캠프는 줏대 없는 엄기영의 행보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엄기영의 이미지를 소신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특히 선거에서는 상대가 허점을 보이면 절대 지나쳐서 안 된다.

 

  하지만 원전싸움으로 엄기영 캠프가 손해를 본 것만은 아니다. 원전 반대 입장으로 돌아섬으로써 쟁점화 될 수 있었던 삼척원전 문제가 조기에 수습되어 버렸다. 이에 맞추어 엄기영 캠프는 이번 선거를 정책선거로 치르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용한 선거를 통해서 조용하게 승리를 획득하자는 전략이었다. 공격의 명분을 빼앗겨버린 우리는 ‘소신 없는 엄기영’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엄기영이 쌓아 온 이미지를 흔들리게 할 수 없었다. 

 

  캠프는 후보의 이미지 차별화에 성공했지만 반대 입장을 머뭇거리는 바람에 공격의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원전 첫 싸움은 싱거운 무승부로 끝났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엄기영 캠프의 승리였다. 도전자 입장에서 무승부는 패배를 의미한다.

 

  ‘조용한 선거’ 를 선택한 엄기영 캠프의 선거운동은 탁월한 전략이었다. 강원도에서 엄기영 후보의 인지도는 가히 대통령급이었다. 게다가 수십 년간 앵커로 쌓아 온 온화한 이미지는 그대로 지지율로 흡수되었다. 언론 여론조사는 물론이며 내부 여론조사에서까지 엄기영 후보의 지지도는 철옹성처럼 단단했다.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전까지 상대 후보의 지지도가 50%가 넘으면 그 선거는 해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 바닥의 정설이다. 그런데 엄기영 후보의 지지도가 50%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거운동 첫날까지도 그 지지도는 빠지지 않았다. 그것은 엄기영 후보의 지지도가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필패는 불을 보듯 뻔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위기감을 느낄 때였다. 패배를 뼈아프게 겪어 본 사람은 동물적으로 패배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때가 그랬다.

 

  캠프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조용하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조용한 패배 밖에 없었다. 반 MB 선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서서히 힘을 얻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후보는 10킬로 마라톤 완주에 이어 오토바이 타기와 번지점프, 그 추운 꽃샘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수상스키까지 타면서 투표독려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름 알리기에 온 몸을 던지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겨운 진정성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지표는 요지부동이었다.

 

  초기 전략 기조로 잡은 이광재 동정론이 크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심지어 현지에서조차 너무 이광재를 앞세운다는 비판이 접수되고 있었다.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강릉지역을 비롯한 영동지역이 20% 가까이 뒤지고 있었다. 이광재의 텃밭이라고 불리던 태백 · 영월 · 평창 · 정선까지도 크게 밀리고 있는 추세였다. 이광재를 앞세웠지만 유권자에게 이광재와 최문순을 하나로 묶는 데는 실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광재에 대한 애틋한 동정과는 상관없이 강원도민들에게 이광재는 이광재고 최문순은 최문순이었던 것이다.

 

  이제 캠프가 믿을 것은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바로 TV토론이다. 강원도에서 TV토론은 선거에서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였다. 시청률이 18%에 육박했으며 엄청난 구전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이광재 승리도 TV 토론이 출발점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많은 도민들이 TV 토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기영 후보측에 이명박 대선 토론팀이 붙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상대도 TV 토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난 TV 토론이 커다란 변수가 된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이유는 우리가 준비하는 만큼 상대도 충분하게 준비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내 판단이 틀렸다. 문제는 엄기영 캠프가 과도하게 준비를 했다는 데 있었다. 조금 후 설명하겠지만 엄기영측의 오버질이 결국 자살골을 넣고 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두 후보의 삶에 대한 철학이 TV토론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 해도 평생 살아 온 삶의 자세와 철학마저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었다. 이번 TV 토론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점은 엄기영의 몰락이라기보다는 최문순이라는 준비된 정치인의 부상이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말처럼 세상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사람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져나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좋은 점이 나쁜 점이든.

 

우리는 TV 토론의 기조를 크게 세 가지로 수립했다.

 

첫째, 삼척원전과 한나라당 입당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엄기영 후보를 줏대 없고 소신 없는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으로 규정한다.

 

둘째, 힘 있는 여당,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강원도 차별을 부각하여 ‘강원도 홀대론’을 비판함으로써 엄기영 후보가 내세우는 ‘힘 있는 여당’론을 괴멸한다.

 

셋째, 수치를 정확하게 말하고 각종 도표를 준비하여 자주 노출함으로써 최문순이 신뢰성과 책임감 그리고 준비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도민에게 각인시킨다.

 

  토론 실무진들이 밤을 새워가며 일에 몰두했다. 들리는 풍문에 저들은 7천만 원짜리 토론팀이었지만 우리는 진정성 하나로 뭉친 불굴의 용사들이다. 게다가 패배를 딛고 일어 선 잡초들이었다. 많은 후보들은 토론을 앞두고 예민해진다. 긴장감 때문이다. 난 최문순 만큼 여유로운 후보를 처음 보았다. 

 

  참모들의 주문을 정확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말의 핵심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문제라고 한다면 자신의 생각이 너무 또렷하여 참모들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후보는 엄기영에 대한 네거티브 발언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신사적인 전술에 대해서도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참모들을 애태웠던 것은 후보가 자신에 대한 자랑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선거에 나온 후보가 자신을 홍보하는데 있어 머뭇거리는 모습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 아이구 이걸 어떻게 내입으로 ······, 이건 좀 ······, ”

 

  없는 사실을 말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이룬 치적을 이야기하라는데도 후보는  쑥스러워하고 계면쩍어 했다. 예를 들어 후보의 MBC 사장시절 대장금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세계 각국으로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참모들에게 ‘대장금’은 좋은 홍보 포인트였다. 구전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쉬웠으며 후보가 능력있는 경영인이었다는 사실을 한 방에 알리는 참으로 좋은 사례였다. 하지만 후보는 단 한 번도 대장금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유는 그 기획을 본인이 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 모든 업적들은 자신만이 아니라 실무자들이 함께 노력한 공동의 성과물이라는 것이다. 최문순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윽고 첫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엄기영후보는 족집게 과외선생에게 수업을 받은 값만큼 일취월장해 있었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 때 보여주던 약점들을 거의 극복하고 있었다. 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엄기영 후보의 원고에는 제스추어와 억양까지 마치 연극 대본처럼 지문이 씌어져 있었다고 한다.

 

  엄기영은 스킬을 공부한 것이다. 잘 연습된 배우처럼.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점이 독이 되고 말았다. 엄기영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기 보다는 엄기영의 단점을 극복하려다보니 지금까지 TV 브라운관에서 보여주던 온화한 이미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을 살아 온 철학적 문제이기도 했다. 후보는 그 점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후보의 통찰력은 무서웠다.

 

“ 엄기영 후보나 나나 강원도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살아 온 바탕이 분명히 대비될 것입니다. ”

 

  엄기영 캠프는 지난 선거에서 힘없는 모습으로 일관하다 대패한 이계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강한 엄기영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 결과 그동안 온화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강하지도 온화하지도 못한 최악의 캐릭터를 만들고 말았다. 만약 엄기영 캠프가 무모한 정치적 강공을 버리고 온화한 엄기영의 이미지를 살려 잔잔한 정책적 이슈만 자근자근 설명했다면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토론 기조 자체를 강한 여당론에 힘을 쏟아 강한 엄기영을 만들려다보니 오히려 어색한 엄기영이 되고 말았다. 이전까지 쌓아 온 온화한 이미지는 간데없고 표독스러운 모습이 연출되고 말았던 것이다. 너무 강하게 힘을 쓰다 보니 나오지 말아야할 건더기까지 여과 없이 누설되고 말았던 것이다.

 

  엄기영은 초반부터 천안함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색깔론으로 최문순을 덧씌우려 했다. 엄기영의 예기치 못한 공격에 후보는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기에서 만족하고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엄기영 후보는 꺼내지 말아야할 판도라 상자마저 열어버렸다. 기어이 이광재 책임론까지 내세워 야멸차게 최문순 후보를 몰아 붙였던 것이다. 최문순은 수세에 몰렸으며 엄기영은 미소까지 띄며 최문순을 그로키로 몰아갔다. 공방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엄기영의 대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시작이었다.

 

  나는 현장에서 드센 엄기영의 공격으로 수세에 몰리는 후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릎을 쳤다. 드디어 우리가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이광재로 인하여 수세에 몰리는 최문순을 지켜보는 강원도민의 심정이 어떠할까? 특히 지난 선거에서 이광재 지사를 선택했던 강원도민은 이광재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최문순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난 그동안 최문순과 이광재를 각각 따로 국밥으로 인식했던 강원도민들이 이 장면을 통해 드디어 이광재와 최문순을 하나로 동일시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광재 동정론이 최문순에게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약자를 응원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명분마저 최문순에게 있었다.

 

  그에 반해 엄기영 후보의 모습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쓰러진 후배까지 짓밟는 매정한 엄기영으로 각인될 것이 뻔했다. 난 사실 엄기영 캠프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이광재 책임론으로 선공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승리가 확실한 선거에서 굳이 이광재를 선거에 끌어들일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우리가 이광재 책임론에 대한 비판을 공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정말 궁금하다. 왜 엄기영 캠프는 이광재 책임론을 스스로 꺼내들어 조용한 선거판에 이광재를 리바이벌 시켰을까? 추측컨대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 여론조사를 오독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조사를 살펴보면 이광재 책임론과 동정론이 엇비슷한 상황이었다. 엄기영 캠프가 들고 나온 ‘힘 있는 여당’을 맹신한 나머지 캠페인의 기조마저 힘이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광재 문제를 역공을 통해 털고 가자고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참에 이광재를 확실히 죽이고 가자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스스로의 힘을 과신한 탓이다. 과신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독약과도 같다.

  엄기영 캠프의 슬로건 역시 힘 있는 여당론에 맞추어 “웃어라 강원도” “엄기영이면 됩니다.” 였다. 힘을 과시한 오만하고 방자한 슬로건이다. 나는 곧바로 이를 패러디한 구전 메시지를 만들어 전파했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 “엄기영이면 X 됩니다.”

 

  X의 의미는 알아서 판단들 하시라. 만약 엄기영 캠프가 이번 선거에서 힘을 빼고 무리하지 않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선거를 치렀다면 정말 이기기 힘든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다.

 

1차 토론으로 드디어 잠자던 이광재가 선거판에 귀환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