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순C 이야기

최문순캠프 뒷이야기3 '개콘을 만든 벌벌 엄기영'

zamsi 2011. 5. 4. 13:07

 

 

  1차 토론이 끝나고 수많은 의견이 분분했지만 난 역전의 드마마가 시작되었다고 확신했다. 우리가 의도했던 한나라당의 ‘힘 있는 여당’론에 일정부문 타격을 주었으며 후보의 신뢰감 또한 새롭게 인식시켰다. 정치공방에서 다소 밀리는 듯했지만 색깔론은 더 이상 선거 판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점에 대해서는 후보의 철학이 또렷했다. 처음 토론을 준비하면서 사과하고 털고 가자는 의견이 개진되었지만 후보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신념과 관계된 문제에 대해서 최문순 후보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후보의 어투는 담담했지만 확고부동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색깔론,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엄기영 캠프의 색깔론에 대응하여 평화를 앞세웠다. 후보는 '접경지대'라는 말의 폐기를 천명하고 '평화지대'로 새롭게 이름지었다. 또한 평화가 밥이고 곧 돈이 된다는 논리를 반복적으로 전파했다. 제 2 개성공단인 ‘평화의 공단’ 조성과 설악산과 금강산 DMZ을 연결하는 ‘한반도 평화의 공원’을 공약 전면에 내 걸었다. '평화의 문'을 열어 '번영의 길'을 터서 강원도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선포식도 가졌다. 또한 후보는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속초, 고성 등 접경지대의 아픔과 실상을 언론에 노출될 때 마다 되풀이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지역민의 아픔을 껴안았다. 그리고 후보 집안이 군인 가족임을 내세워 “우리 가족 군 경력을 합치면 70년” 이라는 감성적인 멘트를 퍼트렸다.

 

  그 결과 천안함 색깔론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우리의 '평화' 담론이 더 지역민의 감수성을 자극했으며 그 결과 지난 이광재 선거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던 '평화지역'으로 변한 접경지역에서 신승을 거두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한 마디로 색깔론의 참패였다. 더 이상 색깔론으로 남과 북의 갈등을 조장해서 안 된다는 국민여론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이제 이광재 책임론을 부각시킨 엄기영 후보의 공격이 역습을 당할 차례만 남았다. 게다가 엄기영은 지난 TV토론에서이광재 책임론을 과도하게 밀어 붙이다 이광재 지사의 기소 시점을 MB정권과 상관없는 참여정부 시절이라고 말해버렸다. 이광재의 낙마가 정치보복이 아니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지만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었다. 박연차 사건은 MB정부의 대표적 정치보복이었으며 이 때문에 노무현대통령까지 돌아가신 사건이었다. 물론 이광재지사 역시 이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알았던 몰랐던 엄기영 후보의 엄청난 실수였다.

 

  캠프는 온 힘을 다하여 엄기영 후보의 허위사실 유포를 공격했다. 중앙당과 도당은 물론 성명서와 대변인을 통하여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난 메시지의 컨셉을 '허위사실까지 동원하여 후배를 짓밟는 배은망덕한 엄기영'으로 맞추었다. 이를 통하여 최문순과 이광재가 하나라는 점을 더욱 공고하게 부각시키고, 쓰러진 후배의 등에 칼을 꼿는  엄기영의 배은망덕을 각인시키는데 총력을 다했다. 메시지팀의 입장에서 울고 싶은 애 뺨을 제대로 때려줬는데 크게 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일일 메시지를 엄기영 후보의 배은망덕, 허위사실 유포로 집중하고 긴급 유세문을 작성하여 전 지역 운동원에 전달했다. 난 이미 이번 선거를 정치선거로 규정함과 동시에 메시지에 한해서 철저하게 네거티브 선거전을 치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물론 후보는 결코 네거티브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무리 약한 네거티브라도 스스로 발언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그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이었다. 캠프가 만들고자 했던 후보의 이미지는 ‘의리를 지켜 이광재를 구하려는 사람’이었지 ‘이광이재를 대리해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보를 제외한 선거운동원을 비롯한 연설유세원과 조직은 철저하게 네거티브 공세를 펼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엄기영이 앵커로 단단하게 다져 온 온화한 이미지를 깨트리지 않고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지를 좋게 만들어 지지도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상대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따라서 난 엄기영 후보가 가진 기회주의적 처신을 배신과 소신과 줏대 없는 정치인으로 규정하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만들어 전파함으로써 시종일관 한 목소리로 엄기영을 비판했다. 마치 네거티브의 전도사처럼.

 

  1차 TV토론으로 '이광재와 최문순‘이 드디어 하나로 묶이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캠프는 이광재 전지사의 지역구였던 태백 · 영월 · 평창 · 정선의 플랜카드를 문구를 ‘이광재에게 최문순을 더하겠습니다.’로 즉시 교체했다. 또한 이광재 지사 부인, 이정숙여사의 기자회견을 열고 이광재 동정론과 최문순을 하나로 묶어 전파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온라인에서는 이정희 여사의 연설 때 눈물을 흘리던 후보의 사진과 동영상과 글을 갈무리하여 유포하기 시작했다.

 

  꿈쩍도 않던 엄기영 후보의 지표가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최문순 후보의 추격세가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반등의 조짐, 반격이 시작되었다. 캠프는 전열을 가다듬고 2차 토론회 준비에 들어갔다. 2차 토론에서는 엄기영 캠프의 정치공세에 적극적인 반격을 가하기로 했다. 특히 엄기영 후보가 실수한 이광재 전 지사의 기소 시점에 대해서 꼭 사과를 받아내어 초반부터 승기를 잡기로 했다.

 

  1차토론회와 달라진 것은 후보의 자세였다. 1차 토로회가 끝난 후, 후보는 급변한 엄기영의 모습에 당황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이광재 지사 책임론으로 공격할 때는 내심 크게 화가 났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변한 엄기영 후보의 모습이 슬펐단다. 이 사람 참 독특하다. 싸워서 무찔러야 할 상대 후보에게 연민을 느꼈단다. 최문순은 그런 사람이다. 아무튼 2차 토론은 강하게 밀어 붙이겠다고 단단히 약속했다. 1차 토론회까지 후보는 엄기영 후보에게 “선배님” 이라고 깎듯이 호칭했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하지만 2차 토론회에서는 호칭이 “엄후보” 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사감을 버리고 적극적 공세를 취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2차 토론이 시작되었다. 상기된 두 후보의 모두 발언이 끝났다. 최문순 후보의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TV 기자답게 카메라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을 뿐만 아니라 침착성과 여유까지 보였다. 놀라울 정도의 적응력이었다.

 

“엄후보님 사과하십시오”

 

  시작과 동시에 최문순 후보가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집요하고 예리했다. 지난 1차 토론회에서 실수한 이광재 지사의 기소시점에 대해서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그것은 토론팀의 전략이기도 했다. 엄기영은 최문순의 강공에 허둥대기 시작했다. 표정이 변하고 자세가 흐트러지더니 급기야 횡설수설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엄기영 캠프의 또 하나의 뼈아픈 실수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결과적으로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에둘러 지나가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길 떠나는 홍길동도 아닐진대 실수를 실수라고 말하지 못한 엄기영후보는 그야말로 횡설수설 전전긍긍의 작태를 연출하고 말았다. 당황한 엄기영 후보의 헛소리. 시치미 떼기, 동의어 무한반복이 시청자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결국 대답을 추궁하던 최문순후보에게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엄기영 후보의 이와 같은 동문서답은 캠프 온라인팀에 의해 편집된 동영상으로 제작되었고 이를 퍼다 나른 네티즌들에 의해 무려 2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 엄기영 후보는 인터넷에서 ‘벌벌 엄기영’. ‘개콘 엄기영’으로 회자되며 그동안 쌓아 온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에 비해 최문순 후보의 톤은 안정되어 있었으며 조목조목 따져 묻는 말 속에는 차분함과 진실성까지 엿보였다. 엄기영 후보가 다시 색깔론을 끄집어내서 천안함을 공격했지만 후보의 말 한마디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 전쟁이 나면 지금이라도 총을 들고 최전방으로 나가겠습니다.”

 

  왜 엄기영 캠프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사과를 두려워했던 게다. 스스로 강자라고 믿었던 엄기영 캠프에게 사과는 치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기영 캠프는 강자의 사과가 오히려 더욱 여유 있고 겸손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마지막까지 힘으로 밀어 붙이려다 결국 그 좋은 이미지의 엄기영을 ‘개콘 엄기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후보의 말처럼 이 모든 상황은 결국 후보의 철학에서 나 온 것이다. 엄기영 캠프의 전략적 판단에 오류가 있었지만 결국 이를 받아 들이고 승인한 것은 엄기영 후보 자신이었던 것이다.

 

  2차 토론회는 대승이었다. 오죽했으면 토론회가 끝나자 캠프에서는 만세를 불렀다. 확실한 반전의 기세를 잡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메시지팀은 즉각 “엄기영 알고 보니 이계진 보다 못 하더라” 라는 구전 메시지를 만들어 전파하고 ‘이광재 살리러 온 최문순. 이광재 죽이러 온 엄기영’이라는 대립각을 만들었다.

 

  2차 토론회 이후 민심의 방향이 표가 날 만큼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최문순을 알아보기 시작했으며 각 지역 현장에서 민심이 바뀌고 있다는 소식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바닥 민심이 최문순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이제 메시지의 기조를 바꿀 때가 왔다.

 

  일일메시지에서부터 유세문까지 네거티브를 버리고 최문순표 공약으로 대체했다.  어르신용 유세문과 여성, 학생용 공약유세문을 따로 만들어 각 지역에 새롭게 배포했다. 유세문 내용은 최문순표 공약으로 채웠다. 각 지역별 현안을 18개 시군별로 파악하고 각 지역 공약 유세문을 새롭게 작성하여 전파했다. 영동지역 공약을 위하여 ‘동해안시대’ 개막을 알리는 내용을 포함했다. 인지도가 올랐을 때 최문순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 캠프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후보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약이었다. 최문순의 사람됨을 알리고 이미지화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했다. 선거에서 공약은 후보의 이미지를 만드는 가장 빠르고 좋은 도구이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5대 강원도 홀대론’을 만들어 엄기영 후보의 ‘힘 있는 여당’론을 ‘힘 있는 한나라당의 만행’으로 엮어서 끊임없이 공격하는 메시지를 생산했다. 우리 후보의 공약을 선전함으로써 후보의 이미지를 만들고 상대후보의 공약을 무력화시키는 네거티브를 병행한 것이다. 캠프 사람들이 내 성을 따서 나를 ‘네가 조’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확고했다.

 

이번 선거는 네가티브 없이 절대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