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zamsi bon cinema

행복한 당신에게

zamsi 2009. 8. 3. 09:00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만약 당신이 행복하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생각해 본적 있는가? 그리고 혹 당신의 행복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어버리는 자기최면은 아닌가?


아! 지난한 삶이여... 아! 구질구질한 삶이여...

삶은 왜 이다지도 외롭고 고단한 것일까....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을 봤다. 영화는 결국 행복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적 외로움을 다루고 있다. 불행으로 이어지는 그 끈적끈적하고 고단한 삶이 너무 슬퍼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허진호 감독은 10 여 년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 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싱싱한 심은하의 미소가 아름다운 영화이다. 이후 이영애와 유지태가 출연하는 ‘봄날은 간다’와 욘사마 배용준과 여우같은 손예진이 주연한 ‘외출’을 감독했다.


허진호는 시쳇말로 말해 대박을 치는 감독은 아니지만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유지하면서도 작가의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는 재주가 남다르다. 난 허진호 감독의 찬찬한 내러티브가 참 좋다. 현란한 카메라 워킹을 최소한으로 줄인 롱 테이크가 극을 담백하면서도 편안하게 만들어버린다.


허진호가 만들어 내는 미장센은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와 비슷하다. 기타노 다케시의 화면이 남성스러우면서도 우직한 장엄미가 있다면, 허진호의 화면에는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고졸한 여백의 미가 담겨있다.


영화 ‘행복’은 행복할 수 없는 인간 군상의 한계적 심리를 말하고 있다. 주인공 ‘은희’와 ‘영수’는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불치병 환자다. 


극에서 영수는 가장 도회적이며 감각적인 인간을 표징한다. 통속하고 말초적인 도시에서 아웃사이더처럼 부유하는 영수. 그에게 가족 따위의 등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친구도, 애인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잠시의 인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냉정하지도 물욕에 굴신하지도 않는다.


술과 여자에 쩔어 살던 영수에게 남은 것은 결국 알콜 중독과 간경변 밖에 없다. 반면 은희는 시골적이며 목가적이고 순수하다. 하지만 흔히 시골이 상징하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은희에게는 없다. 세상에 자신을 건사해 줄 그 어떤 피 붙이도 없다.

 

폐병에 걸린 그녀에겐 오직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밖에는 없다. 은희는 고독이라는 절체절명의 낭떠러지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갸날프게 쥐고 세상을 살아간다.


이 어울리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시작부터 어그러진 부조화의 연인이 가져 올 결론은 뻔하다. 파국!  너무 흔한 신파다.


하지만 이 뻔한 신파에 허진호는 외로움을 덧씌운다. 은희가 영수에게 퍼 붙는 사랑은 그야말로 헌신적이며 맹목적이다. 난 그 맹목적 사랑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그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고 정의해도 좋을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은희는 영수에게 ‘혼자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난 어린 시절, 심장병으로 죽은 사촌동생의 죽음에 슬퍼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어린 동생의 죽음이 슬프면서도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은희의 영수에 대한 사랑은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허상일지도 모른다. 실연의 상처로 인해 마치 어미를 잃은 짐승처럼 신음하는 은희의 울부짖음은 그래서 더욱 짠하다.


영수는 은희의 사랑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수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감내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사랑을 은희에게 받는다. 그 큰 사랑이 고맙고 감사하지만 부담스럽다.

영수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은 받아 본 사람만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관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영수는 끝내 은희를 버리고 다시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 속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들지만 늘 그렇듯 상처를 입고 쓰러진다.


영수는 다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은희를 찾았을 때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어쩌면 죽는 마지막 순간 은희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은희가 떠나간 빈집에서 울려나오는 영수의 울음은 은희에 대한 회한이라기보다는 늦게나마 깨달은 사랑에 대한 상실감이리라.


인간에게 행복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사랑이 행복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영화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너무 많이 울어버렸다. 한계 지어진 우리의 고단한 삶이 슬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