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동안

장례식 가는 길

zamsi 2014. 3. 22. 21:05

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가는 늦은 밤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내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입을 꼭 다물었다.     

 

율리의 손에 쥔 장난감에서는

쉴 새 없이 단조로운 영어 동요가 흘러나와

묵은 공기처럼 눅눅한 차 안의 침묵을 깨트리고 있었다.

 

아내는 율리 나이에 엄마와 헤어졌다.

그날 밤이 기어이 어머니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별이었다. 

네 살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이별 역시 일방적인 통보로 끝났다. 

 

아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묻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휠씬 아내에게 좋을 것 같았다.

 

자정 무렵 도착한 장례식장은

텅 빈 공원묘지처럼 을씨년스럽고 고요했다.

개관한지 채 한 달이 넘지 않았다고 한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천정이 높아 

작은 발자국 소리도 유난히 크게 울렸다.  

 

먼저 도착한 아내의 오빠와 언니가

두런두런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었다.

아내는 마치 잘 못 찾아 온 손님처럼

우두커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내 옆에서 낯선 분위기에 실증난  율리가

 '엄마, 엄마' 아내를 부르며 칭얼댔다. 

아내가 한 없이 가여웠다.

 

장례식 첫날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임종이 늦어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장례식 밤이다.

커다랗고 넓은 장례식장을 신이 난 율리만 뛰어다녔다.

 

'원 리틀, 투 리틀 쓰리 리틀 인디언....'

율리 장남감에서 흘러나오는 단음의 영어 동요가 텅 빈 장례식장을 울렸다. 

 

모두 새벽 통이 틀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분명 외로운 분이었을 테다.

외로운 죽음 앞에서 아내도 나도 손윗 처남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아침을 기다렸다.

 

날이 밝고 입관을 위해 온 가족이 모였다.

그래봐야 아내와 나 처형 부부와 처남, 다섯이 전부다.

장모의 모습을 본 것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죽음으로 맞이한 사위와 장모의 어색한 만남이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수의에 쌓여 밀랍같은 장모의 얼굴은 아내와 똑 닮았다. 

 

처형의 흐느낌이 깊어지더니 이내 커다란 울음으로 변했다.

아내는 애써 울음을 견디고 있었다.

끝내 마른 짚단이 버석거리는 소리처럼

가늘고 마른 아내의 울음이 흘러나왔다.

 

오래 참은 울음이었으리라....

아내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가슴 아픈 것은 식구 모두가

목 놓아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안함과 죄스러움,  세상에 대한 원망이 차갑게 안치실을 억누르고 있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문상객을 맞고

마치 예견된 행사처럼 장례식은 끝이 났다.

 

"오늘이 어쩌면 엄마의 가장 좋은 날인 줄도 모르겠다"

 

처형의 씁쓸한 탄식이 가슴을 찔렀다.

한 번도 다 모이지 못한 가족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함께한

가족의 서러운 사연에 대한 한탄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 못도 아니다.

탓할 사람도 시간도 흘러가버렸다.

 

한 줌 재로 변하여 흙으로 돌아간 장모를 묻고 집으로 돌아왔다.

율리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종알대고 아내는 여전히 말이 없다.

 

"고생했어요."

 

아내가 내게 건넨 말이다.

아내는 평생 가슴에 마음의 고생을 안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제 아내의 짐을 나와 율리가 나누어져야 한다.

 

"여보, 정말 고생했어요."

 

칭얼대는 율리의 손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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