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동안

중섭을 만나다

zamsi 2016. 6. 15. 14:23

  서울시의회 건물은 오래되고 낡은 느낌을 준다. 건물의 외관보다는 계단이나 창틀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다. 시의회에서 시의회 건물처럼 나이 든 시의원 한 명을 만났다. 일을 마치고 나니 정오의 여름 햇살이 제법 따갑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덕수궁을 들렀다. 한 때 왠지 마음이 무거우면 궁궐을 찾던 버릇이 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궁궐 속을 거닐다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난 궁궐이 주는 오래된 느낌이 편하고 좋다. 내 생각이지만 날이 갈수록 궁궐들이 현대화되고 있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낡은 단청은 짙어지고 잘 손질된 반듯하고 각진 문턱이 시절을 단절하는 것만 같다. 새로움은 오래된 것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그만큼 존재의 이유가 또렷하다. 존재의 가치를 똑바르게 아는 것이 새로움의 시작일터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을 만났다. 한국 현대화의 거장이며 많은 팬을 가진 화가 중 하나다. 어쩌다 잡지나 도록에서 이중섭을 만났지만 사실 커다란 감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가난 속에서도 치열한 예술 혼을 지켜 낸 화가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중섭은 나이 마흔에 죽었다. 내 나이보다 꼭 10년이 어렸을 때 불꽃 예술 혼을 태우고 산화했다. 문뜩 부끄러웠다.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허우룩하게 살아 온 삶에 대한 반성이자 찬란한 예술을 만들어 낸 작가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다.


아주 오랜만에 전시회에서 그림을 본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 듯 갤러리의 벽에 걸린 그림이 훨씬 더 작가의 혼에 다가가기 쉽다. 좋은 그림에는 틀림없이 작가의 혼이 담겨있다. 작가의 성성한 정신이 실린 붓끝이 관객을 홀리게 하고 우리는 화면에 배태된 예술의 넋에 감동한다. 나는 갤러리가 주는 진지한 분위기가 참 좋다. 시큼한 물감 냄새와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진지한 눈빛이 묘한 동화를 불러 일으킨다. 


길게 줄을 서 그림을 봐야할 정도로 관람객이 많다. 의외로 지긋하게 나이가 든 관객이 많았는데 곱게 차려입은 노년의 부인들과 초로의 신사들이 멍하게 화면에 빠져 있다. 중섭은 한 때 예술을 동경하는 아니 예술적 분위기에 매혹된 세대들의 아이돌이었는지도 모른다.


  동글동글한 아이들의 순수하며 때로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표정들이 화폭을 메우고 있다. 내켜 휘두른 굵은 선, 희미한 배색과 파스톤 풍의 엷은 배경이 화면의 인물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어쩐지 미륵반가상의 보살과 표정과 닮아 보였다. 평화롭지만 처연하다. 자유롭지만 자유를 갈구하는 몸짓이다. 그래서 슬퍼 보이고 그래서 아파 보인다. 알기로는 그림 속 아이들은 일본으로 떠나간 중섭의 자식들이라고 한다. 늦게 아빠가 되어보니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더욱 아프게 다가선다.


중섭의 아이들 그림에는 게와 물고기가 유달리 많이 등장하는데 피란시절 제주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행복한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물고기는 중섭에게 자유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물고기가 되어 현해탄 건너에 있는 아이들 만나고 싶은 도타운 부성애가 화폭으로 상징화 된 건 아닐까. 게들이 아이들이 생식기를 물고 있는 그림은 현실에 대한 성적 억압 또는 거세된 역사가 화폭으로 옮겨진 것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그림이 참 편하다. 유독 한 편 그림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엽서만한 종이에 일획으로 내쳐 그린 물고기를 안고 있는 아이 그림이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저처럼 완벽한 구도와 평화로움을 그려 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천재가 가진 재능일테다.   





걸음을 옮기다 중섭의 대표작 흰소 앞에서 홀린 듯 섰다.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작가의 아우라에 차마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땅을 박차고 선 단단한 발.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한 눈빛. 단순화된 굵은 뼈대에서 예술의 강인함이 서려있다. 흐트러짐 없는 구도와 짙으면서도 옅은 배경이 황소를 압도하듯 관객의 시야로 몰아 넣는다. 황소의 처절한 눈빛이 가삐 숨을 몰아 쉴 정도로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무엇이 작가를 이토록 뜨겁게 만들었을까? 중섭의 사무친 예술과 삶에 대한 치열함이 붓끝에 오롯이 살아있다. 명불허전. 비로소 숱한 사람이 중섭의 흰소를 찬양해 마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관람을 마치고 나온 미술관 밖은 여전히 햇살이 뜨거웠지만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작열하는 덕수궁 마당을 걸었다. 대지를 딛고 선 황소의 힘찬 코 울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중섭의 그림이 뇌리에서 가시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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