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동안

고맙다. 카잘스!

zamsi 2016. 6. 21. 15:01






이십 대 중반. 연극으로 밥 빌어먹기는 부자가 천국 가는 것보다 더 힘든 시절이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때다. 보다 못한 선배가 아르바이트를 제의해 왔다. 선배가 운영하는 지하 골방 같은 작은 카페에서 서빙을 하기로 했다. 월급이라고 해봐야 고작 차비를 겨우 넘긴 돈이었지만(하긴 그 때는 걸어 다녔으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입 하나 덜자는 심정으로 카페 알바를 시작했다. 오전에 문을 열고 저녁 때까지 가게를 보는 일이 내 업무의 다였다.

 

오전 11시쯤 출근하여 밤새 어지럽힌 가게를 청소를 하고 손님들이 마실 물을 끓였다. 정오가 넘으면 문을 열었는데 토요일을 제외하고 평일에는 저녁까지 거의 손님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빙이라기보다 청소부라는 말이 더 적확한지도 모르겠다. 남은 시간동안 내가 하는 일이란 한 쪽 벽면을 가득채운 LP를 틀어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는 일이 다였다. 그 때 참 많은 클래식을 들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난한 연극쟁이 청년에게 현실은 불안 그 자체였다. 예술에 대한 꿈은 멀었고 현실은 너무 가까웠다. 하루하루가 우울했다. 밤이 되면 늘 술에 취해 행복했지만 깨고 나면 암울한 현실이 슬펐다. 그 시절 만난 곡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은 악보로만 남아 있다가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한 한 연주가에 의해 빛을 보게 됐는데 그 곡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사람이 바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다. 카잘스가 아니었더라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은 영영 사장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카잘스를 듣던 날이 정말 어제처럼 선명하고 또렷하다. 커다란 주전자를 가스렌지에 올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다 우연히 빼어 든 자켓이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곡이었다. 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전축바늘을 걸었다. 순간 둔중한 첼로소리가 가슴을 때렸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한 지하 카페에서 가느다랗게 숨죽이며 울었다. 낮고 느리지만 처절한 첼로의 흐느낌이 가슴을 후벼 팠다. 올려놓은 주전자 물이 끓을 때까지 꼼짝도 않고 그 긴 카잘스의 첼로곡을 다 들었다. 이후 날씨가 흐리거나 상념으로 마음이 답답할 때면 어김없이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곡을 들었다. 그러면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출근길 무심히 차에 꽂아 넣은 CD가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곡이었다. 오랜만에 카잘스의 연주를 들었다. 차가 꽤 막혔지만 음악에 빠져 지루한 줄을 몰랐다. 그리고 문뜩 삶이 소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때때로 음악은 세상을 관조하는 힘을 준다. 고맙다 카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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