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여의도에 갔다.
내리는 비를 그저 맞고 선 전투경찰들의 긴 행렬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귀퉁이 비에 젖은 비둘기
버스 차창으로 이지러지는 빗방울 속에 세상이 온통 젖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처량한 유행가의 사랑타령이
날씨 탓인지 가슴에 박힌다.
미칠 듯 사랑했던 기억이
추억들이 너를 찾고 있지만...
우산도 없어 정류장에서 사무실 까지 비를 맞고 걸었다.
길지 않은 거리임에도 세찬 빗방울에 젖고 말았다.
비에 젖은 몸 마음마저 젖어버린 것만 같다.
젊은 시절 비만 오면 까닭 없이 취했다.
한 번은 만취해 골목길에 등을 기댄 채
빗속에서 잠이 든 적도 있었다.
그 때 나를 찾으러 온 사람이 선배였는지 후배였는지
친구였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분명한 것은 그 일로 인해 호되게 앓아누웠다는 사실이다.
한 참을 앓고 나 일어나니 왠지 훌쩍 커버린 느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비는 마음을 눅눅하게 만든다.
젊지도 않은 나이지만 비만 오면 마음이 심란하다.
아직 철이 덜 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