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동안

푸르른 날

zamsi 2016. 9. 12. 12:43

제법 역사의 진보를

신봉하는 나는

개인과 역사의 유관성을 믿는다.


그런 나에게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에 대한 의분이 남아 있다.


친일의 역사가 그러하고

독재 정권의 장본인과 하수인들이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정의롭지 못한 현대사가 그렇다.


때문에 정의롭게 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강퍅한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이문열의 뛰어 난 문장에도 쉽게 감동하지 못한다.

작가 이문열의 세상을 보는 편협한 시각이 미운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문열 만큼

현학적이고 미려한 문투를 가진 작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미당 서정주 만큼은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시인이 살아 온 삶은 친일의 역사이며

독재에 부역해 온 불의한 시대를 상징한다.

인생의 팔 할이 바람이었다는 미당의 고백은

어쩌면 시대라는 풍진에 흔들려온 자전적 참회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읽게된 미당의 '화사집'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한국 문학 전체를 통 털어

미당 만큼 맛깔 난 시어를 조탁하는 시인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문뜩 서정주가 가 떠 오른 이유는

가을 날, 한 편의 시가 귀와 입에 맴돌기 때문이다.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든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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