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zamsi bon cinema

시간이라는 유죄

zamsi 2009. 8. 3. 08:21

" 절망을 알기 위해 버려진 희망들 희망을 알기 위해 채워진 절망들 "

멋진 싯구다.  어쩌면 세월은 절망에 익숙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차곡차곡 채워진 절망의 끝이 궁극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빠삐용"이라는 영화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유명한 영화다.

탈옥 영화라기 보다는 절망 속에 자유와 희망을 찾아가는 인간의 끈질긴 집념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스티브 매퀸은 참으로 매력있는 배우다.

6 ~7 십년대의 꽃 미남 배우들 속에서 평범한 얼굴로 살아 남은 명배우이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성격파 배우"라고 한다.



난 개인적으로 스티브 매퀸의 튀지 않는 연기가 좋다.

그의 연기는 힘이 들어가지도 작위적이지도 않다.

심각하지도 않고 카리스마도 없다.

그저 심심한 듯 하면서도 제 맛이 충분이 배어 나는

마치 동치미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가 스티브 매퀸이다.

그에 비해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하는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는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할 만큼 진하고 맛깔스럽다.


더스틴 호프만은 천재 소리를 들어도 무방할 만큼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다.

나는 영화 레인 맨에서 자폐환자로 분한 더스틴 호프만이

정신병원에 걸어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왈칵 쏟았던 기억이 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소름살 돋는 연기 천재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벼랑 끝에서 자유를 향해 찾아가는 친구를 아무런 작심도 없이

그저 멍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그 어떤 움직임도 대사도 없다.

떠나가는 친구를 무심히 내려다 보는 더스틴 호프만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존재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는 흔치 않다.


오늘 문뜩 이 영화가 떠 오른 이유는 일상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독방에 갇힌 빠삐용은 백일몽 같은 꿈을 꾼다.

지평선이 보이는 황량한 사막을 빠삐용은 걷고 있다.

그리고 사막의 지평선 끝에 아스라한 신기루처럼 재판관들이 앉아 있다.


빠삐용은 재판관들에게 자신은 무죄라고 외친다.

자신이 무죄일 수 밖에 없는 변명을 늘어 놓는다.


하지만 재판관의 단 한 마디에 빠삐용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만다.


" 빠삐용 시간을 낭비한 죄, 유죄! "


생각해 보면 시간에 구속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간의 유한성을 따지기 이전에

시간을 좀 먹고 있다는 생각이 우중충한 날씨와 복합해 괜히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나 역시 유죄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유죄일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길티? 길티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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