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zamsi bon cinema

폭력 권하는 사회

zamsi 2009. 8. 3. 08:37

나는 개인적으로 세상의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폭력을 응징하기 위한 폭력에 조차 동의할 수 없다.

우연히 비디오를 통해 한국 영화치고
꽤나 독특한 영화 "구타유발자"를 봤다.

-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 난 "구토유발자"로 오해했었다 -

아무런 기대 없이 본 영화가 좋으면 그 감흥은 더 새롭고 오래간다.
이 영화가 그랬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의 강렬한 인상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그러나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싫어하실 분이 아주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식이다.
다시 말해 폭력은 상방의 관계에서 부터 비롯되어진다.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경우 폭력이라는 행위는 발생되지 않는다.

- 물론 자해나 자살이라는 극단적 폭력도 있을 수 있지만
자해나 자살의 근원을 따져보면 역시 사회 병리적 현상에 기인함을 알 수 있다 -

관계는 사회를 구성하는 일차원적인 밑받침이자 사회를 지탱해 주는 근간이다.
그런데 그 관계 속에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하는 구조적인 폭력이 합법적으로 숨어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계급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가해자는 상층부, 피해자는 하층부의 주종관계가 형성되어지기 마련이다.

가해자는 법률과 도덕을 만들어 피해자를 관리하고 조정한다.
역사는 지난한 인간과 인간의 쟁투 과정이며 살육의 승리자는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영화의 배경은 한적한 시골이다.
섹시한 여제자를 새로 뽑은 벤츠에 실은 기름지고 느끼한 음대교수가
조용한 시골마을에 등장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아주 뻔한 스토리 처럼 교수는 한적한 물가에서 여제자를 범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존댓말을 써가면서 반항하던 여제자가 마지막에 가서 내 뱉는 말이 통쾌하다.

 

" 야 이 개새끼야 "

맞는 말이다. 찾아보면 개새끼들 참 많다.
여기까지 가해자는 교수이고 피해자는 여제자이다.

팬티까지 벗겨진채 노팬티로 도망가던 여제자는
오토바이를 탄 순박한 시골 청년을 만나게 되고 읍내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한 편 여제자를 기다리는 교수는 한 눈에 봐도 동네 건달임을 알 수 있는
청년들에게 뜻하지 않게 둘러싸이게 된다. 차가 모래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까지 갈 줄 알았던 오토바이는 다시 개울가로 돌아와 버린다.
순박하게만 보였던 청년은 동네 건달의 대장격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시 여제자와 만난 교수는 서로의 관계를 숨긴다.
그리고 어색한 그들만의 파티가 시작된다.

영화는 사회를 읽는 단초가 된다.
그러한 이유로 영화는 검열 대상의 최우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영화가 검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줄 알고 있지만
아직 한국 영화는 영등위라는 곳이 있어서 사전검열에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사회학자는 포르노를 허용하는 나라와 금지하는 나라를 비교하면
그 나라의 인권지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한국은 개인의 성적취향과 윤리관까지 친절하게 가르켜 준다.

"이거 보면 안돼요" "이건 보세요!"

국가의 개인에 대한 과도한 친절이 아닐 수 없다.
앞 글에서 언급했듯 우리 일상에서 가장 큰 폭력은
국가가 개인을 압제하는 정치적 폭력이다.

영화 "구타유발자"는 개인의 작은 폭력에서 시작한다.
복수가 복수를 낳듯 이 영화에서는 폭력이 폭력을 유발한다.

가해자는 어느 순간에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종국에 가서 가해자와 연관되어 진다.
이 방식은 스탠리 큐브릭의 "t,시계 태엽 오렌지"를 차용한 것 같다. 

영화의 핵심은 폭력이라는 상징이 우리의 일상을 옭죄고 있으며
그 권력의 울타리에 우리 스스로 기생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강간을 당할 뻔 했던 여제자와 교수의 관계는
권력이 주는 폭력의 정당성을 유감없이 까발린다.
그러나 그 권력의 정점인 교수는 이름없는 촌부들의 폭력에 다시 피해자가 되어 무너진다.

하지만 권력을 이용한 부나비 같은 지식인의 비열함은 모든 새로운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다.
무식하고 아무런 이유 없는 폭력만 행사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촌부들의 폭력은
실상 더 큰 폭력에 길들여진 피해자라는 사실이 퍼즐이 제 모습을 드러내듯 조금씩 밝혀진다.

여기서 난 감독의 시선이 못마땅 하다.

촌부들 역시 폭력의 희생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행사하는 폭력에
사회적 연민을 함의 하는 것은 위험하다.

영화 구타유발자는 우리 모두 폭력에 자유로울 수 없으며
폭력에 처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정점은 부조리한 권력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실상 구타를 유발하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부조리에 침묵하고 방관하고 있는

당신과 나 우리들이다.

내가 이 내용 단순한 영화에 매료된 이유는
이러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타포가 근사하게 포장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줄거리를 길게 쓰지 않은 이유는
혹여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한 친절한 잠시씨의 배려가 되겠다.

단, 보시고 원망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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