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zamsi bon cinema

영화와 섹스

zamsi 2009. 8. 3. 08:42

"틴토 브라스" 라는 이탈리아 감독이 있다.
에로물의 세계적 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리우드의 "잘만 킹" 이 나름대로 꼴림의 미학을 설파하고 있지만
틴토 브라스와 비교하면 어우동 앞에 춘향이 일뿐.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틴토 브라스의 주옥과 같은 필모그라피를 살짝 읊어 보자면
"모넬라""훔쳐보기" "카프리의 깊은 밤" "올 레이디 두잇" "깔리큘라" 등 등이 있다.

다 봤냐고? 비밀이다. ㅠㅠ

아직 왕성한 검열로 인해 많은 영화들이 여전히 영등위의 가위질에 무참히 짤려 나가고 있지만
90 년대 초 중반 뭉텅 뭉텅 난도질 당한 채 줄거리가 도모지 이해가 되지 않을 시절에도
틴토 브라스의 영화는 미처 분출하지 못한 총각의

야릇 몽환적 성적 판타지를 충분 만땅고로 해결해 주곤 했다.

그 시절 나의 소박한 소망 중 하나는 가위질 없는 "틴토 브라스"열렬히 감상하는 것이었다.

틴토 브라스의 영화는 소위 말하는 하드코어에 가까운 에로물이다.
성기의 결합은 없지만 성기의 노출은 아주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물론 한국 개봉판에는 중요 부분에 뿌연 안개가 붕붕 날아 다니지만.
(그것 보여준다고 대한민국이 윤리민국이 되는 것도 아닌데 쯥)

뭐 굳이 프로이드와 푸코를 들먹이지 않아도 지금까지 성의 역사는 억압의 아이콘 이었다.
억압. 누르면 튀어 오르고 모든 금지된 것은 욕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함께 한다.

틴토 브라스의 영화 속 성은 거침과 숨김이 없으며 분방 그 자체이다.
또한 금기시 되는 모든 성적 욕망을 다루고 있다. 심지어 근친상간까지 아주 자유롭게 표출된다.
그 방식이 너무 자유로워서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지금까지 관념 지어진 성적 억압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 마저 준다.

영화는 훔쳐보기이다. 관음을 통한 해방. 대리적 성적 일탈을 틴토 브라스는 제공하고 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난 성과 도덕을 결부시키는 것이 못내 부자연스럽다.

그것은 배고픔과 도덕을 억지로 꿰어 맞추는 논리와 흡사하다.
성의 규제와 억압은 정치적이면서도 다분히 마초적 도덕관념을 규정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샷"은 이러한 왜곡된 성의 이중성을 노골적으로 야유하고 있다.
큐브릭이 성의 왜곡과 이중성에 대해서 관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틴토 브라스는 감성적으로, 감각적으로, 육감적으로, 도발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까발린다.
까발림의 성적 미학이여!

틴토 브라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거의 100 % 가깝게 자유로운 성을 누리고 산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 여주인공들의 성적 해방을 보면서 흥분을 하는 것은 남자들이다.
틴토 브라스의 영화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 난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성에 대한 발랄함 속에서 난 인간의 자유의지를 느낀다.
그런데 영화 속 여주인공들의 대부분은 결말에 가서 도덕과 사회적 관념의 울타리로 돌아가고 만다.
물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결말이 틴토 브라스가 사회와의 타협의 방식인지

아니면 밑바탕에 깔린 일말의 윤리의식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랑과 섹스, 도덕이 과연 동의어로 해석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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