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우아한 독설

게편이 되어 한명숙 죽이기에 앞장 선 언론들

zamsi 2009. 12. 27. 16:10

예상대로 언론이 한명숙 죽이기에 앞장 서고 있다. 그런데 이번 작업에는 진보, 수구 언론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하나가 되어 한명숙 이라는 타켓에 집중 포화를 쏟아 붇고 있다. 수구언론이야 늘상 해왔던 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한겨레를 비롯한 자칭 진보 언론들이 보여주는 보도의 태도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연합뉴스를 진보언론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참여정부 시절만 해도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을 잃지 않고 객관적 보도를 견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는 참여정부 시절에 그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인터넷 포털 뉴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영향력이 확대된 면도 없지 않지만 실상은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우선되어 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합은 정부의 눈치를 아니 볼 수 없는 처지다. 그러더니 역시 MB 정부 들어 그 논조나 시각이 확 바뀌어버렸다.

 

 '돈줄'을 정부에서 쥐고 있으니 아쉬운 놈이 알아서 기어야 하는 마음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눈치만 보면 좋을 것을 요즘 연합뉴스는 전두환 시대의 관제 언론을 보는 듯 하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요긴하게 나발을 불어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CF의 노랫말 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 "가 되겠다.

 

"한명숙 `뇌물 재판' 집중심리 열릴까" 오늘자 연합뉴스의 기사 제목이다.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고, 유치한 기자의 속내가 너무 빤히 들여다 보여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기사를 통해 이세원이라는 연합기자는 이번 사건을 아예 '뇌물 재판'으로 이름 지어버렸다.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까지 모든 사건의 피의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제목만 봐서는 연합은 이미 한명숙 재판을 뇌물재판으로 확정지어버렸다.  여론 재판을 연합뉴스가 앞장서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24일자 기사는 연합을 뛰어 넘어 한명숙을 거짓말 쟁이로 옭죄고 있다.  1면 기사로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더니 이번에는 칼럼을 통해 한명숙을 두 번씩이나 죽이고 있다. 한겨레 법조팀장이라는 이본영 기자는 입으로는 중립을 말하지만 검찰을 편들고 싶은 속내를 결코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에 대해 스스로 '모른다'라고 말하면서도 이죽거리듯 한명숙을 비아냥 대고 있다.

 

"한 전 총리는 검찰 조사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느니 차라리 말을 말자고 마음먹었던 것일까. 아니면 ‘신은 진실을 알지만, 기다린다’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떠올리며 치욕을 감내했던 것일까."

 

펙트에 목숨을 걸어야할 기자가 펜을 통해 추론을 쏟아내고 있다. 그것도 검찰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가재는 게편'이라는 말이 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기자들이 출입처의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기자는 한나라당의 관점에서 정치판을 분석하게 되고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는 청와대 편에서 국정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을 출입하는 법조팀의 경우 검찰과 친해지지 않고서는 기사를 작성할 수 없다. 그러니 검찰과 술 먹는 일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며 서로의 호칭 또한 선배와 후배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게 바로 '빨대'를 만드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 문제가 되었던 폭탄주 회식에서 벌어진 검찰 총장의 '기자 촌지사건'은 바로 이러한 검찰과 기자들의 검은 이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검찰과 기자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악어와 악어새 처럼 서로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공존의 그늘이 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객관성이 결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알게 모르게 가재는 게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기자들은 자신들의 공정하지 못한 시각을 알 수 없다. 시나브로 동류의식이 생겨버린 까닭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연합의 기자나 한겨레의 기자 둘 다 법조팀이다.

 

이번 사건은 검찰의 개혁이 중요한 만큼 언론의 개혁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참여정부는 검찰과 언론을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지는 오래전 부터다. 견제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공수처' 신설을 주장한 것은 검찰을 견제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였다.

 

마찬가지로 참여정부가 기자실을 폐쇄한 것 또한 권언유착의 온상이 되어버린 기자실을 없애 빨대를 통한 취재가 아닌 기자 스스로 발로 뛰는 취재를 통해 언론이 최소한 가져야 할 공정한 객관성을 스스로 지켜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수구, 보수를 떠나 모든 언론들은 마치 독재정권과 싸우듯 강철 같이 하나가 되어 집요하고 끈질기게 싸웠다.

 

하지만 그 언론들이 MB정권 에서 벌어진 피디수첩 사태와 YTN 낙하산 인사, 정연주 사장의 불법적인 해임, 미디어 악법 등 정말 하나가 되어 싸워야 할 때는 시늉만 내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방관하고 말았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많은 언론들이 이미 권력이 되어버렸다. 권력이 되어버린 그들이 권력에 대항하는 세력이 나타날 때 스스로 권력의 편이되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권력과의 유착을 통한 빨대의 단맛을 버리지 못한다. 아니 권력이 꼿아 준 빨대의 단맛에 이미 흠뻑 취해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가재가 되어 게편에 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