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잠시동안

지나간 시절

zamsi 2010. 12. 19. 21:26

 

난 이 십대를 거의 연극에 미쳐 살았다.

대학에 가서 시작한 연극이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친구도 선배도 후배들도 나를 '연극에 미친 놈'이라고불렀다.

 

연극은 내 삶의 철학이었으며 우주였다.

하시라도 연극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똥을 누면서도

심지어 잠에 들면 꿈에서 까지 연극을 하고 있었다.

 

세일즈맨의 죽음,

밤의로의 긴 여로,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고도를 기다리며...

정의의 사람들

어머니

밑 바닥에서

 

난 무수한 명작 희곡을 읽으며 온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흥분하고는 했다.

그렇게 이십 대를 보내고도

난 결국 연극을 포기했다.

생활고가 너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앞두고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 때 내 몸무게는 54 킬로그램을 넘지 못했다.

내 키는 180이 조금 안 된다.

 

연극을 그만두고서도 난 한참을 방황해야 했다.

어디서 북 소리만 들려도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쳐지나가는 여자의 화장품 냄새에서 조차 분장실의 아련한 추억에 잠기곤 했다.

 

난 패배자였다.

때문에 아직도 연극을 하고 있는 친구나 선배 후배들을 보면 많이 부끄럽다.

그들은 아직 이 땅에 연극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연극인들의 일년 연봉은 5백만 원이 안된다.

 

문뜩 지난 시절이 떠 오른 것은 한 곡의 노래 때문이다.

 

박정수의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

 

연습이 끝나면 걸어서 집에를 갈 지언정 우린 꼭 술을 마셨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유난히 노래를 잘 부르던 친구 하나가

잘 가는 주점에서 기타를 잡고 이 노래를 부르면 괜히 마음이 짠해지고 가슴이 헛헛해지곤 했다.

 

이 노래는 내가 이십 대에 아는 노래 중 몇 안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거짓말 같이 들리겠지만 연극에 미처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 대부분을 나는 모르고 살았다.

 

시간이 훨씬 지난 후 나이가 들어

노래방에서 내 또래의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그 시절 노래를 다시 배워야만 했다.

 

오늘 문뜩 인터넷을 서핑을 하다 다시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 홑이불 처럼 사각거리고....."

 

지난 시절이, 열정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겨진 아픔이 회한처럼 차갑게 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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